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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화 거부… 再發 불씨 남아

중국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불문하고 정부 차원에서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국 정부에 밝힘에 따라 역사 왜곡 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정부는 일단 고구려사 문제가 정치화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를 관철시켰다는 점을 나름의 성과로 평가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마지막에는
중국측이 당초 본국의 지침을 벗어나면서까지 우리측의 입장을 수용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만큼 중국이 이번 회담에서 성의를 보였다는 뜻이다.
중국이 한발 물러섰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한·중 간 갈등이 지속될 경우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것이라는 중국측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사 왜곡 문제로 갈등의 골이 깊어질수록 올해로 수교 12주년을 맞는 양국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기
수습에 나선 것이다.
특히 중국측은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우리 정부의 분노와 우려가 예상보다 강하다는 데 상당히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측은 오는 26일 국가서열 4위인 자칭린(賈慶林)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의 방한 때 이 문제로 서로 껄끄럽게 대하는 상황을 원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방한에 앞서 협상에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이 이를 말해준다.
중국은 또 한·중 관계가 악화될 경우 중장기 목표인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훼손될 우려가 있고, 이로 인해 한·미·일 관계가 더 강화돼
중국이 고립될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러한 중국의 급박한 현실인식은 임명된 지 이틀만에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아시아담당 부부장을 한국에 급파한 데서도 읽을 수 있다.
우 부부장은 지난 22일 방한해 23일 하루 동안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이종석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을 면담한 데 이어
카운터파트인 최영진 외교부 차관과 두 차례 회담을 하는 등 9시간30분간의 ‘릴레이 협상’을 벌여 의견접근을 시도했다. ‘만만디’ 중국이 이러한
신속함을 보인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러나 중국측은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삼국시대사 부분의 ‘고구려사’를 삭제하기 이전으로 회복하라는 우리 정부의 요구에는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불가 입장을 밝혀 아쉬움을 남겼다. 중국이 합의사항을 문서화하지 못하고 구두로만 합의했다는 점도 불씨를 남긴 셈이다. 양해사항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합의 내용 자체도 ‘필요한 조치’ 등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들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이번 합의가 자칭린 주석의 방한에 맞춰
급조된 임시방편이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각도 나온다.
또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평가도 많다. 특히 중국 정부가 이번 협상에서 동북공정 자체를 폐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이와 관련, 다른 정부 당국자는 “이제는 중국 정부가 약속한 사항을 제대로 실천하느냐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중국이 말로 한
약속을 어떻게 실천에 옮기느냐가 그만큼 중요한 문제로 남게 된 셈이다. 한국 정부는 또 한번 중국을 믿고 어떤 조치를 취할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게 됐다.
(세계일보 / 박호근 기자 200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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