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 `합의문` 불발 사연 있었다

중국측 '영토·국경 상호 존중 명시' 요구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중단 및 시정조치를 담은 24일 한·중간의 합의가 법적 효력을 갖는 ‘공식합의문’ 형식이 아닌 구두 ‘ 양해사항’으로 결정된 것은 중국측 요구 때문이 아니라 우리 정부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정치권과 학 계에서는 ‘양해사항의 경우 실효성을 담보할 구속력이 없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 당분간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역사왜곡 책임소재 회피 술수" 거부

◈ 정부의 전략 〓 외교통상부는 합의문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왜 중도에 포기했을까. 최영진 차관은 “현실적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국 협상과정에 정통한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초 중국은 합의문 형식을 강력 주장했다. 정부도 처음에는 합의문 도출을 위해 논의에 적극 임했다. 그러나 논의를 하다보니 중국의 노림수가 읽혔다. 합의문이 성격상 쌍방의 의무사항을 열거한 상호주의를 기본으로한다는 점을 악용하려는 술수였다. 더구나 중국은 ‘영토 와 국경에 대한 상호존중’도 합의문에 담을 것을 요구했다. 정부 관계자는 25일 “중국이 고구려사 파문사태의 책임소재를 흐리게 하고 (역사왜곡의)재발방지를 위한 양국의 의무사항을 담으려는 기도에 말려들 수 없었다”고 밝혔다. 즉 문제를 유발시킨 게 중국이니 만큼 시정조치의 주체는 쌍방이 아닌 중국이 돼야한다는 판단이었다. 최 차관은 이날 라디오에 출연, “중국은 한국도 왜곡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상호주의를 주장했다. 이는 우리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배경을 되짚었다. 결국 우리 측 요구에 의해 양해사항 형식을 채택했고, 5개항중 문제의 역사 왜곡의 중단과 시정조치의 주체는 중국으로 한정키로 낙착됐다.

양측의 주어가 된 사항은 학술교류개최, 정치화 방지및 공정한 해결도모, 동반자관계의 발전노력 등 지난 2월 이미 합의된 내용 들이다. 양해사항도 ‘정치적 구속력’을 지니고 있어 현실적 구속력을 발휘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 전문가 진단및 정치권의 시각 〓 학계에서는 양해사항 채택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향후 강화된 조치를 주문했다. 배긍찬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구두양해는 문서보다 효력이 없고 언제든지 깰 수 있지만 짧은 시간내 타협을 통해 우리측 요구가 많이 수용됐다”고 평가했다. 윤휘탁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은 “우리 정부는 문제가 재발할 경우 저지할 만한 협상카드를 갖고 있는 것 같지 않으며 중국도 한국민들의 반중열기를 무마시키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의 비판 강도는 거셌다. 24 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회의에서 열린우리당 한명숙 의원은 “ 구두양해를 통해 이 문제를 학술적으로 해결하자고 결론냈는데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며 “중국이 ‘정치화’를 꺼린 것은 한반도 통일후 영토문제와 소수민족 통합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자민련 김학원 의원은 “문서로 하지 않아 안 한 것 만도 못했다”고 질타했다.

(문화일보 / 김상협·유희연기자 2004-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