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성스런 한국사람들
지난 4월 20일 나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세계 불교 법왕청’을 세우기
위해 몽골 정부에 법인허가서를 제출했다. 제출한 지 얼마 후 몽골정부에서 연락이 왔다. 내용인즉 종교 법인허가를 위해선 몽골불교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간단사 주지스님의 추천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간단사를 찾아갔다. 종정스님을 만나 방문한 목적을 말씀드렸더니 종정스님께서 물으신다.
“무엇 때문에 종교 법인허가를 내려 하십니까? 설마 몽골불교를 정복하러 오신 것은 아니겠지요.”
기대치 않았던 종정스님의 질문에 나는 아연실색했다.
“물론 그런 것은 아닙니다. 실은 고려 유민들의 애혼을 달래고 동북아시아 불교의 발전기지를 몽골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중국도 있고 소련도 있지 않습니까?”
“중국은 아직도 공산주의 정책을 표방하고 있어 국민들의 종교 자유가 완전히 허락되어 있지 않고, 소련은 불교가 신앙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말에 종정스님은 다시 정색을 하고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어가신다.
“내가 며칠전 집안의 제사가 있어 가족들이 모두 모였는데, 3년전 한국에 가 있다 온 장조카가 선영에 절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삼촌! 이제
사탄 노릇 그만하고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고 해 집안사람 모두를 놀라게 했고, 나는 억장이 무너졌소. 이것이 모두 한국사람들의 교조적 가르침
때문이라 생각하는데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할말이 없었다.
5년전만 해도 몽골에는 ‘오보(Ovoo)’라고 하는 선왕단이 있어 먼 길 가는 사람들의 길잡이는 물론 잠깐 쉬어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는
장소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행위는 초자연적 힘을 믿는 오랜 민속전통이 종교의 행위로까지 승화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하느님 말씀을 전한다는 선교사들이 대거
들어오면서부터 선왕단의 자취가 사라져가고 있다 한다. 자기네 종교를 전도하기 위해 수천년 동안 내려온 그 나라 풍속을 미신이라며 파괴한다면 이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까.
오늘날 한·중간에 일어난 고구려 문제만 해도 그렇다. 1980년대 중국의 사회과학연구소는 티베트 문제를 제외하고는 동북쪽에 위치한
민족자치지역에 대해 별로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런데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 들어가 탈북자들을
도우면서 ‘중국의 동북지방 세 성은 옛날 고구려 땅’ 이라면서 그 지방에 사는 한족을 선동했다는 것이다.
비록 언어와 풍습이 같고 역사적으로 문화의 공유로 사고방식에 근사치가 있다 하더라도 중국에 사는 한족들은 어디까지나 중국사람이다. 그런데
남의 나라에 가서 그 나라 통치자의 신경을 건드리는 말을 함부로 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앞으로 몇 년 지나면 오늘날의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성장력으로 선진화 대열에 들어서게 된다고 자부하고 있다.
오늘날 인도적인 입장에서 탈북자를 돕기 위해 나서고 있는 사람들이 구원활동과 선교활동을 병합하면서 중국 고유의 미풍양속을 파괴하고 있는
한국사람들을 중국정부가 방관만 하고 있을 리 없다. 이는 장차 한·중 외교문제는 물론 더 많은 고대역사 왜곡으로까지 확대되지 않는다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세계는 한 꽃이요 만인은 동체다. 같은 땅 지구촌에서 서로 다른 사상과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남의 문화와 역사를 파괴하고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돕고 화합하여 살아간다면 인류문화는 이 땅은 물론 이웃나라에 새롭게 꽃 피울 것이고, 세계는 이름 그대로 불국정토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세계일보 2004-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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