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학자들 ‘역사왜곡’ 논쟁회피
한·중 역사학자 토론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러 선남선녀를 보낸 곳이자 수·당이 고구려를 치기 위해 배를 띄웠던 산둥반도의
역사적 군사 요충지 펑라이시(옛이름 등주)에서 21~22일 한·중 역사학자들의 국제학술토론회가 열렸다. ‘등주항과 한·중교류’란 주제의 이
토론회는 지난 7월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왜곡 문제가 불거진 뒤 처음으로 한·중 역사학자들이 만나는 자리였다.
이번 토론회에는 최병헌 서울대 교수 등 한국 학자 13명과 마이훙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 등 중국 학자 37명이 참가했다. 이틀 동안
고대에서 현대까지 다양한 주제의 논문 39편이 발표된 이번 토론회는 ‘고구려사 왜곡’이 주된 주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역사 왜곡’ 문제를
학술토론을 통해 풀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줬다.
김영하 성균관대 교수는 21일 ‘나·당 외교상의 몇가지 문제’란 논문을 통해 1272년 전 발해의 등주 공격 이후 당 신라 발해 일본이
서로 대립하면서 당-신라, 발해-일본의 연합관계가 형성되는 등 네 나라가 대등하게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형성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에 이어
발표에 나선 왕샤오푸 베이징대 교수는 ‘신라 북방경계와 당나라의 요동’이란 글을 통해 같은 시기의 문제를 다뤘다. 그는 미리 인쇄된 발표문에선
“고구려족은 중국 동북지방에 살았던 한나라의 신민”이라고 주장한다거나, “발해-신라를 ‘남북국 시기’로 보는 건 명확한 역사적 오해”라고 하는
등 고구려·발해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는 이들과 같은 주장을 폈으나, 정작 발표 땐 이런 예민한 부분을 모두 건너뛰었다. 물론 이 논문에서 그가
주장하려 한 것은 “신라가 염두에 둔 ‘통일’이란 대동강 이남의 ‘삼한 지역’일 뿐 고구려는 아예 염두에 없었다”는 점과 “고구려 멸망 이후
요동은 전성시기의 당나라가 확고하게 장악했다”는 것이었다.
한 참가자는 “토론회 석상에선 예민한 주장을 숨기고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주억거린 뒤 돌아가선 다시 ‘동북공정’의 시각에 입각해 글을
써댄다면, 이런 식의 학술토론회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비판했다. (한겨레신문 / 이상수 특파원 2004-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