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벽화속 `鳥羽冠 쓴 한국계 사신`은 신라인"

학계 '황룡사지 출토 人物文塼' 통해 새 주장

경주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인물상이 선각(線刻)된 전돌 1점이 이 절의 조성 당시 신라 문·무관인의 복식형태를 알려주는 자료로 새롭게 확인됐다. 특히 화상(畵像) 중의 문관상은 약간 파손되기는 했지만, 당나라 장회태자(章懷太子) 이현(李賢·654~684) 묘 벽화에 그려진 ‘조우관(鳥羽冠)을 쓴 고대 한국계 사신’의 복식 형태와 거의 흡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에 따라 이 인물문전(人物文塼)은 그동안 고구려 또는 신라 사신인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많았던 이현묘 벽화를 비롯해, 중국 내륙과 네이멍구(內 蒙古),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발견되는 벽화나 유물 속에 묘사된 ‘조우관을 쓴 고대 한국계 사신’의 국적 판정에 새로운 비교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이건무 관장과 김길식 고고부 학예연구관은 24 일 출간된 ‘고고학지’(한국고고미술연구소) 제13집에 기고한 논문 ‘황룡사지 출토 인물문전’을 통해 이 전돌의 인물상이 투구와 갑옷으로 중무장한 무관 2명이 조우관을 착용한 고위관인 1 명을 시위하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것임을 밝혀냈다. 이 인물문 전의 존재 자체는 조유전 동아대 초빙교수(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와 김성구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장 등의 소개로 알려졌지만 지난 84년 출간된 발굴보고서에도 실려 있지 않는 등 그동안 연구자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었다. 자연히 이 전돌에 새겨진 인물상에 대한 구체적인 고찰이 시도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황룡사지 서회랑지 외곽 서편에서 출토됐다고 알려진 이 인물문 전은 출토 당시부터 일부가 깨어져나가고 없는 상태였다. 현재 잔존 길이 23㎝, 폭 19.2㎝, 두께 6.3㎝ 크기의 장방형 전돌로 색깔은 회색이며 매끈하게 물손질된 표면에 예리한 도구로 선각 한 3인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이 관장과 김 연구관에 따르면 벽 돌의 전체적인 크기나 남은 부분의 인물 배치 상태로 보아 결실된 부분에 인물이 더 새겨져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황룡사지 출토 인물문전의 화상과 삼국의 복식〓현재 확인 가능한 3명의 인물 중 맨 앞의 문관상(인물 1)의 경우 앞쪽 일부가 결실됐음에도 불구하고 조우형(鳥羽形) 관식(冠飾)을 꽂은 고깔 모양의 변형모(弁形帽)를 쓰고 있는 모습 등 전체 모습은 어느 정도 파악 가능하다.

관과 연결된 띠가 얼굴의 왼쪽 측면으로 연결돼 내려오며 바지는 바짓부리를 각반 같은 것으로 동여맨, 통이 넓은 것이다. 저고리의 소매도 폭이 넓으며 넓은 깃이 직령(直領)교임으로 표현돼 있다. 허리에는 요대(腰帶)를 매어 겉옷(袍·포)의 윗부분이 밑으로 처져 풍만감을 준다. 두 팔은 가슴부분에서 서로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며 턱에는 길다란 수염이 표현돼 있다.

이에 비해, 인물 1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의 뒤에 그려진 인물 2, 3은 전체적으로 작은 쇳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비늘갑옷( 札甲·찰갑)과 투구를 착용한 무관상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이 관장 등의 설명이다.

이들 무관은 왼팔은 벌리고 오른 손에는 칼 등의 무기를 들고 있으며, 머리에는 복발(覆鉢·주발을 엎어 놓은 모양의 장식)과 수술, 차양이 있는 투구를 쓰고 있다. 이 관장 등에 따르면 띠(또 는 끈)로 연결된 조우관을 쓴 것은 이현묘의 고대 한국계 사신이나 양직공도(梁職貢圖)의 백제사신, 번객입조도(番客入朝圖)의 고구려·신라 사신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삼국 복식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통이 넓고 바짓부리를 동여맨 형태의 바지나 긴 저고리도 이차돈 순교비(629)와 경주 단석산 공양인물상(7세기 초), 고구려 고분 벽화, 이현묘 벽화, 양직공도 등에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또 인물 2, 3의 형태와 선각 기법이 유사한 것으로 ‘이양선 기증 활 석제(滑石製) 두침(頭沈·베개)’에 표현된 무사상이 있으며, 투구와 비늘갑옷은 경주 안압지 출토 청동제 투구나 경주 능지탑· 김유신묘 등 통일신라기의 십이지상(十二支像)에 유사하게 표현 된 예가 있다.

◈인물문전의 제작시기와 내용〓황룡사는 553년 첫 공사가 시작 된 이후 92년이 지난 645년 마지막 건축물인 9층 목탑이 완성됐 기 때문에 인물문전의 제작시기도 이 기간 중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관장 등은 구체적으로 이 전돌의 문관상이 중국 당대 복식의 요소가 일부 가미된 이현묘 벽화의 고대 한국계 사신의 복식 형태와 흡사한 점을 들어 신라가 당제 복식을 수용한 진덕왕 2년(64 8)을 전후한 시기의 신라 관복을 표현한 것으로 보았다.

이에 따라 이 전돌도 비슷한 시기인 643~45년 황룡사에 조성된 9 층 목탑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됐을 가능성이 유력하며, 그림의 내용도 같은 기간 중 황룡사에서 있었던 중요한 사건 또는 행사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무엇보다 조우관을 쓴 고위관료인 문관을 좌우 후방에서 갑옷과 투구로 중무장한 2명의 무사가 호위하며 걸어가고 있는 모습으로 볼 때, 깨어져 나가고 없는 문관상의 전면 부분에 화상 전체의 중심인물이 있었을 가능성 이 크다. 이 관장 등은 “중무장한 무관 2명과 고위 관료의 시위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이라면 왕과 같은 최고 지배자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 화상은 백고좌회(百高座會)·연등회와 같은 불사 (佛事)에 참석하기 위해 왕과 대소 신료들이 일정한 대형을 갖추고 걸어가는 장면, 즉 출행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 석했다.

◈당나라 이현묘 벽화 등에 나오는 고대 한국계 사신의 국적은〓 지금까지 중국 내륙과 중앙아시아 지역의 벽화나 유물에서 발견된 ‘조우관을 쓴 고대 한국계 사신’들은 고구려 아니면 신라 사신으로 추정해왔지만 학계에선 아직 확실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상태다. 다만 근래에 이 벽화들이 그려진 7~8세기 대에 해당 지역에 있던 고구려 유민 세력의 추이에 비중을 두어 고구려 사신일 가능성에 보다 큰 무게를 둔 견해가 제기됐었다. 그러나 이 인물문전과 비교해보면 적어도 이현묘 벽화에 나오는 고대 한국계 사신은 고구려 보다는 신라가 당나라에 파견한 사신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 관장 등의 결론이다. 당시 신라와 당나라간 연합 공조체제의 형성과 문헌에서 다수 확인되는 신라의 당나라에 대한 사신 파견 기록 등이 이를 뒷받침하며, 유독 신라 지역에서 많이 확인되는 당나라와 서역의 문물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화일보 / 최영창 기자 2004-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