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장악하는 자가 미래 지배한다

요즘 역사 논쟁이 뜨겁다. 노무현 대통령의 과거사 진상 규명 제안과 중국이 우리의 고구려 역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만들려는 한국사 ‘말살’기도가 도화선이다. 왜 역사 논쟁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이미 반세기 전에 타계한 ‘1984년’의 저자 조지 오웰이 남기고 갔다. “과거를 장악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장악한 자가 과거를 장악한다”는 것이다. 이 진리는 과거사 진상규명 이나 중국의 고구려사 ‘도굴’(盜掘) 행위의 동기를 설득력있게 설명해 준다.

우선 과거사 진상규명 문제부터 보자. 한나라당은 여당의 공세가 박근혜 대표를 겨냥한 정략적 공격이라고 본다. 여당이 박 대표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을 들추어 박 대표의 미래를 차단하려 한다는 것이다. 오늘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과거 장악 싸움’이다. 따라서 과거사 진상 규명을 반대하는 야당의 태도 역시 정략적인 점에서 여당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48년의 반민특위법 정신 대로 “개인의 영달과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제에 협력하여 민족에게 해를 끼친 자”들을 가려내 단죄해야 한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국민은 단 한 사람도 없으리라고 본다면 과거사 진상 규명에 반대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 더구나 지금의 진상 규명은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사실 규명이 목적이라지 않는가?

‘과거규명’은 민족적 통과의례

제2차 대전 이후 나치나 일본에 점령 당했던 나라 중에서 부역자들을 처벌하지 않은 나라가 한국 말고 몇 나라나 있는가? 때가 좀 늦었지만 국가와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진상 규명은 한번 거쳐야 할 민족적 통과의례다. 친일과거사를 청산하지 않으면 앞으로 두고두고 국론을 갈라 놓는 불씨가 될 것이 뻔하다. 다만 현재를 장악한 자가 ‘역사 바로 세우기’를 명분으로 ‘과거를 장악’하려 한다는 의혹을 받지 않도록 과거사 조사에 정부나 정치권이 개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 광복회나 역사학회 같은 국민이 신뢰할만한 독립기관이나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나라당은 친일과거 조사와 함께 ‘친북 용공’ 과거까지 조사하자고 제안한다. 못 할 것 없다. 그러나 친일 조사를 끝내고 하는 것이 순서다. 시기적으로 친일 문제가 앞서 있고 그 결과에 따라 ‘친북 용공’ 조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고구려사(史) ‘말살’ 계획은 학자들의 학문 차원이 아니라 공산당과 정부가 앞장 서서 지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중요한 국가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민주국가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중국이 여전히 전체주의 공산국가임을 전세계에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화비평가 츠베탄 토도로프는 20세기 전체주의 체제는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위험한 행동을 저질렀는데 그것이 바로 “기억을 말살하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스탈린의 소련이 그랬다. 지금 중국이 그 뒤를 밟고 있다. 연세대 김선자 박사에 의하면 중국은 이미 80년대에 서남공정(西南工程)이라는 이름으로 1천 수백 년이 넘는 티베트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하고 지금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만드는 한국사 말살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티베트의 경우가 영토를 강점한 다음 역사를 말살하는 작전이었다면 고구려사는 다양한 미래의 비밀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먼저 역사를 ‘말살’한다는 장기적 음모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물론 흥분은 금물이다. 그러나 정부는 정정당당하게 중국의 행동을 따지고 그 시정을 꾸준히 요구해야 한다.

학계와 지식인 활동 중요

중국의 보복이나 파생되는 손실은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 민족의 정체가 걸린 문제다. 한국 정부가 처음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신중히’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은 아주 잘못한 일이었다. 강대국은 약소국의 침묵을 자기들의 부당한 행동을 묵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드골 외교의 화신인 쿠브드 뮈르빌은 외교에서 약소국의 무기는 강대국의 위협을 받을 때 소리를 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들이 강대국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전세계에 알려 강대국이 세계의 눈이 두려워 부당한 행동을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기억할 교훈이다

정부의 행동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사학계와 지식인들의 활동이다. 중국은 그들이 2천년 동안 인정해 온 한국의 고구려 역사를 부인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기들이 과거 역사를 잘못 알았음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그렇다면 비단 고구려사만 잘못 알았겠는가. 중국 역사 전체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 원(元) 청(淸) 티베트 신장 내몽고 등의 역사를 다시 조명하고 중국의 소수 민족들의 역사적 정체를 규명해서 국제학술회의나 인터넷을 통해 이들의 역사가 티베트나 고구려사처럼 중국의 ‘역사 위조’의 산물임을 전세계에 알려야 한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장행훈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내일신문 2004-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