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동북공정, 온라인게임서도 계속

‘온라인 게임 속에도 동북공정?’

중국이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비롯해 중국 소수민족사 포섭을 위한 ‘역사의식’을 한국 온라인 게임 속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중국에서 청소년 온라인 게임 유저층이 두꺼워짐에 따라 한국 온라인 게임에 들이댄 ‘심의’의 칼날이 더욱 날카로워지는 분위기다. 2004년 중국 온라인 게임 유저 수는 4180만명. 이들이 즐기는 게임 가운데 한국 온라인 게임 비율은 60%를 넘어서며, 게임 유저는 대부분 성장기에 있는 10대 청소년이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한국 온라인 게임에서 티베트, 이슬람교, 고구려 등이나 연변 조선족, 신장(新疆)자치구 위구르족, 시짱(西藏)자치구 티베트인 등 자국 소수민족을 자극할 만한 내용의 단어는 여지없이 잘라내고 있다. 중국이라는 ‘호랑이’에게 이런 단어는 ‘곶감’보다 더 무섭다. 이에 한국 온라인 업체들은 호랑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알아서 몸을 낮추고 있다.

◆ 대만은 중국 영토로, 일본은 ‘동이’로 = 중국 영토 내 역사는 중국의 것이라는 의식에 기반을 둔 소수민족 포섭의 노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영토 확보’다. 즉 ‘땅따먹기’에서 우위를 차지해야만 역사의 소유권 쟁탈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땅 욕심’은 최근 조이온이 개발, 다음달 9월 중순쯤 중국에서 상용화 서비스를 앞두고 있는 온라인 게임 ‘거상’의 심의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거상은 1590년 임진왜란 이후 격랑에 휘말린 명, 조선, 일본 등 동북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온라인 게임이다. 난세를 만나 개인적 영달을 위해 적국의 도시를 누비는 상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우선 중국 정부의 심기를 처음 건드린 것은 이 게임 속에 나타난 지도. 게임에서는 중국 소수민족 자치구로 돼 있는 네이멍구가 몽골 영토에 들어가 있으며, 대만이 ‘대만’으로 표기돼 있다. 이에 심의를 맡은 중국신문출판총서는 대만을 ‘펑라이’(蓬萊·대만의 옛이름)로, 네이멍구는 아예 중국의 영토로 표시할 것을 요구했다. 거상의 서비스를 준비 중인 게임 유통업체 ‘감마니아 코리아’는 유통허가에 해당하는 판권번호를 받기 위해 중국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또 일본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동이(東夷)’로 격하돼 임진왜란이 ‘동쪽의 오랑캐가 일으킨 난’으로 돼 버렸다.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온라인 게임 ‘거상’이 심의를 통해 마치 ‘판타지’물이 돼 버린 것. 한 현지 게임업체에 종사하는 재중동포 관계자는 “아무리 역사적 사실일지라 하더라도, 중국과 다른 나라 사이의 다툼을 묘사한 내용은 게임 속에서 절대 묘사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소수민족 종교 이미지, 삭제 대상 1호 = 영토문제뿐 아니라 게임이 인해 청소년의 ‘역사의식’이나 ‘정체성’을 흔들 수 있는 위험성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게임 심의에서 소수민족 종교의 색채를 띠거나 중국 본래의 미풍양속을 헤치는 요소가 조금이라도 담기면 사실 여하를 막론하고 칼날을 댄다.

중국에 진출한 한빛소프트의 온라인게임 ‘탄트라’의 경우, 일부 캐릭터 이름이 수정됐다. ‘무하마드’ 등의 캐릭터 명칭이 이슬람교를 믿는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을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 그 심의의 잣대는 때때로 상식을 뛰어넘는다. ‘돼지 몬스터’라는 몬스터 이름이 돼지를 금기시하는 이슬람교적 색채가 비친다는 이유로 심의 대상에 오를 정도다.

반면, 중국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일례로 최근 중국에 진출한 온라인 게임 ‘샤이닝로어’에서 몬스터로 등장한 ‘팬더’는 중국의 미풍양속을 헤친다는 이유로 ‘흑곰’으로 수정됐다.

또 종교적 색채를 띠는 민감한 단어들은 ‘욕설’에 앞서는 삭제 대상 우선순위다. 중국 현지 한국 업체의 한 관계자는 “온라인 게임 속 채팅에서 티베트, 이슬람교, 파룬궁 등 종교적·이념적인 단어들은 쓸 수 없게 필터링해야 한다”고 말했다.

◆ 심의는 한국업체 견제수단? = 우리나라 문화관광부에 해당하는 중국의 문화부는 온라인 게임물에 대한 심의를 한층 강화할 것임을 밝혔다. 본래 중국에서 ‘심의’라는 행정적 절차는 없다. 문화부 산하단체인 중국신문출판총서가 판권번호를 발행하며 이에 준하는 권한을 행사해왔다. 하지만 오는 9월부터는 문화부가 직접 칼자루를 잡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관련 업계는 중국의 심의가 시장진출에서 발목을 잡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신문출판총서가 요구하는 사안에 대해 게임 내용을 적극적으로 바꿔왔으나, 이는 대부분 게임 시스템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중국 문화부가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게임을 부분적으로 다시 제작해야 한다면 게임업체로서는 큰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또 중국 정부가 한국의 정체성이나 역사의식에 반하는 요구를 해올 경우 업체들은 한·중 국민 감정의 틈바구니 속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실제로 조이온이 2002년 중국 진출을 시도한 전략 시뮬레이션 ‘임진록’은 한·중·일 삼국 간의 전투를 소재로 했다는 이유로 시장 진입에 실패했으며, 올해 초 외국산 PC게임 ‘하츠 오브 아이언’의 경우는 티베트 등이 중국의 영토로 표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입금지 조치를 당했다.

이와 관련, 게임산업개발원 마케팅팀 이수진 대리는 “중국 문화부 심의 관련 고위 공무원들과 정기적 교류를 갖고 대화해나가고 있다”며 “게임업체들이 중국 정부의 요구에 맞게 내용을 적절히 고쳐나가고 있어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일보 / 우한울 기자 2004-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