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 왜곡’ 중국 왜 침묵하나

중국 정부ㆍ언론 짠 듯 언급 피해…한 중국인 “수치스럽다. 고구려·신라·백제는 한국 국가”

중국에서 갑자기 ‘고구려’가 사라졌다.

최근 들어 인민일보나 신화통신은 물론, 주요 관영매체 어느 곳에서도 고구려사 문제를 거론하는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언론은 물론, 정부 당국과 정치권이 연일 이 문제를 거론하고 있지만 중국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고구려사 문제가 단순한 학술 문제가 아니라 이미 양국의 첨예한 외교 문제로 떠오른 현실을 감안하면 중국의 이 같은 반응은 뜻밖이다. 우리 정부의 한 당국자는 “한국이 고구려사 문제에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할 줄 중국이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조금 당황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분석한 뒤 “중국 정부와 언론이 침묵한다고 해서 그들의 기존 입장이 변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침묵하는 중국 언론

중국인들에게 고구려 문제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6월 하순부터다. 중국 정부가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 일대의 고구려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신청을 하면서 고구려 유적이 집중적으로 중국 언론에 소개됐다. 이 때까지만 해도 고구려 유적 자체에 대한 소개가 주류였다. 그러나 7월 1일 고구려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확정되면서 이들의 보도 내용이 바뀌었다. 인민일보와 신화사 등 관영매체들이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확정 직후, 일제히 ‘고구려는 고대 중국 동북 지방의 소수민족 정권’이라고 주장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관영 매체의 이런 왜곡 보도에 이어 지린성과 지안시 정부는 7월 20일부터 ‘고구려문화여행절’ 행사를 대규모로 진행하며 고구려 유적 현지에서 ‘고구려가 중국 동북 지방의 소수민족 정권’임을 일방적으로 선전하기 시작했다. 중국 외교부가 한국 역사를 소개한 홈페이지에서 ‘고구려’를 삭제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도 이즈음이다.

우리 언론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정부는 중국 측에 공식적으로 항의했다. 그 뒤부터 중국 정부와 언론의 태도는 또 한 번 돌변했다. 약속이나 한 듯 고구려 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특히 7월 말 이후 인민일보·신화통신·중국청년보 등 주요 관영 언론 매체에는 단 한 건의 고구려 관련 보도도 나오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의 반응도 비슷하다. 한국 정부와 언론의 잇따른 항의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는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하순 중국 외교부에 공식 질의서를 보냈다. 외교부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고구려’를 삭제한 이유와 고구려사가 어느 나라 역사에 속하는지 귀속(歸屬) 문제에 대해 물었다. 이 질의서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고구려 귀속 문제에 대해 즉답을 회피한 채 “고구려 문제는 논쟁이 있는 학술 문제”라며 “양국 학술기구가 학술 교류를 통해 인식을 공유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입장만 밝혔다.

중국 정부는 지난 8월 6일 박준우(朴晙雨) 외교통상부 아태국장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와 외교부를 잇따라 방문하며 8시간30분 동안 마라톤 협상을 벌였을 때도 조선일보 질의에 회신한 내용과 같은 입장을 견지했다.

고구려사 문제가 이처럼 양국의 외교적인 현안으로 부상했지만 중국 언론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우리 정부가 주한 중국 대사를 불러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항의하고 김하중(金夏中) 주중 대사가 중국 외교부를 방문, 항의하는 사태까지 빚어졌지만 별도의 보도가 없었다.

중국인 고구려사 문제 모른다 

일반적인 중국 사람들은 고구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중국인들의 고구려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달 초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에서 열린 세계유산대회에서 있었다. 이 행사를 생중계한 중국 국영방송인 CCTV의 아나운서가 ‘고구려(高句麗)’를 언급하면서 ‘가오쥐리’라고 발음했다. ‘구(句)’는 일반적으로 ‘쥐’로 발음하지만, 고구려의 ‘句’는 ‘거우’로 발음한다. 따라서 ‘가오거우리’라고 발음해야 맞다. 보통의 중국인들은 이를 혼동하기도 하지만 국영방송 아나운서가, 그것도 고구려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순간을 방송하면서 고구려를 어떻게 발음하는지조차 몰랐다는 것은 중국 사람들의 고구려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고구려사 문제가 한·중 양국간의 외교적인 쟁점이 돼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알 수 없다. 오히려 한국 언론매체의 인터넷 중국어판 기사를 읽고 고구려사 문제를 알게 됐다는 중국인들이 적지 않다.

기자에게도 조선일보 인터넷 중국어판 기사를 읽고 이메일을 보내온 중국인들이 많았다. 몇몇 중국인들은 고구려사 내용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었다. 평범한 독자가 아님은 분명했다. 이런 사람들은 중국 관영매체나 고구려사 왜곡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사회과학원 동북공정에 복무하는 학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했다. ‘고구려가 고대 중국의 동북 지방 소수민족 정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중국의 독자들 중에는 “고구려는 확실한 한국의 역사”라며 “왜 중국이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사람도 있었다. 조선일보의 고구려 관련 기사를 인터넷 중국어판으로 읽고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온 한 대학생은 “학교에서 분명히 고구려가 한국의 고대 국가라고 배웠고 지금 교과서도 그렇게 돼 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석사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중국인은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우리가 미국을 향해 ‘패권주의’를 추구한다고 욕했는데 한국으로부터 똑같은 욕을 듣게 될 줄 몰랐다. 아주 수치스럽다”면서 “고구려, 신라, 백제는 분명히 한국 국가”라고 했다.

[‘고구려사 왜곡’ 기사 읽은 중국인] “언제부터 교과서가 바뀌었는지…”
“한국인에게 미안하다 말하고 싶다”

조선일보 인터넷 홈페이지 중국어판 기사를 읽고 중국의 대학생과 대학원생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대학원생

중국과 한국은 사이가 좋든 나쁘든 이웃이다. ‘멀리 있는 친척이 가까이 있는 이웃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갑자기 좋지 않은 일을 만났을 때 도울 수 있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 함께 누릴 수 있는 것도 이웃이다. 당연히 이웃 간에는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고구려 문제처럼 말이다. 나는 매우 부끄럽게 여긴다! 패권주의, 강권(强權)정치라고 중국인들이 미국인을 욕했던 말을 한국인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스스로 자신의 입을 때리는 듯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중국에서 고구려 관련 보도는 거의 없다. 나도 조선일보를 보고서야 알았다. 소학교 교과서에서부터 나는 고구려, 신라, 백제가 한국의 3국이라고 배웠다. 왜, 언제부터 중국 교과서가 변했는지 모르겠다. 정말 놀랐다.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관련 보도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마 스스로 이유가 불충분함을 알아서 한국 국민들을 볼 면목이 없을 것이다. 내가 감히 보증하건대, 내가 예전에 배웠던 역사는 고구려, 신라, 백제가 100% 한국의 3국이라는 것이다. 한국 국민들이 우리를 미워하지 말기를 바란다. 중국인들은 참으로 선량하다. 나쁜 사람들은 권력 있고 머리가 이상한 몇몇 사람들일 뿐이다.

대학생

최근 조선일보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고구려사와 관련해 한국이 중국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우리 외교부 홈페이지를 보니, 당신이 쓴 것처럼 한국 관련 내용이 변경돼 있었다. 우리 정부가 잘못한 것 같다. 한국의 많은 시민들이 이번 일로 시위를 벌이며 항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일로 많은 한국 국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미안합니다’라고 한마디 하고 싶다.

사실 나도 우리 정부가 당신이 보도한 것처럼 고의로 역사를 왜곡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나 결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는 현재 대학교 3학년인데, 내가 겪은 10여년간의 중국 교육 과정 중에서 선생님이나 우리들의 교과서는 고구려가 한국의 역사라고 가르쳤다. 진짜 그렇다.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는 ‘소일본(小日本)’이다. 중국과 한국은 비록 수교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양국 관계는 매우 좋다. 나도 한국을 매우 좋아한다. 한국 노래와 영화를 좋아하고, 내 주변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세계는 그다지 평화롭지 못하지만 중국 사람들의 특성은 미국과는 다르다. 일본과는 특히 다르다. 중국은 절대 패권주의를 추구하지 않는다.

(주간조선 / 조중식 특파원 2004-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