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부국강병론

문민정부 시절에 김영삼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하여 정상외교를 펼친 자리였다. 대통령을 수행한 공보수석 및 외교안보수석이 ‘친중국 외교자세’를 놓고 주중한국대사를 공개적으로 몰아붙여 불협화음이 노출된 일이 있다. 대통령 측근으로 통하던 주중 대사는 한·중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북한 핵 문제를 기자들에게 전하면서 “지금까지는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협의를 거쳐 중국에 통고하여 협조해 왔으나 앞으로는 처음부터 중국과 협의하겠다”는 요지의 발언이 있었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공보수석은 대사에게 항의하며 그 발언을 취소하라고 요구하자 외교안보수석도 가세하여 베이징 땅에서 친미·친중 외교노선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에 일각에서는 대미외교를 끔찍하게 중요시하는 수석들보다는 주중대사가 오히려 한국 외교의 균형과 방향 감각을 잘 잡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친미외교 일변도이던 당시의 정황에서는 유별난 사건이었다.

요즘 ‘모화(慕華)사대사상’을 경계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먼지를 뒤집어 쓰고있던 이 말이 중국의 고구려사 조작 탓으로 다시 고개를 들게된 것이다. 지난 총선 직후에 여당 워크숍에서 당선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을 때는 중국을 대외정책에서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나라로 꼽은 사람이 63%에 달했다. 그러던 것이 386세대 출신을 중심으로 한 열린우리당 소장파 의원들이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를 둘러싸고 친중(親中) 위치에서 후진하는 낌새가 보인다고 전해진다. 대미 자주외교를 주장하는 소리가 가라앉고 중국에 대한 호의적 시각이 줄어든다는 관측이다. 대중국 자주외교론과 친미국 안보우호론의 목소리가 다시 커진다는 말이다.

대중 자주외교론, 친미 안보우호론

한미우호협회가 발간하는 ‘영원한 친구들’(2004년 6월호)에 유엔대사를 거친 보수인사의 글이 실렸다. “양자강의 용(중국)과 태평양의 독수리(미국)”의 덩치와 힘을 비교한 필자는 중국은 우리 민족과 수 없는 곡절과 사연의 역사로 엉켜있어 전통에 비추어 봐도 중국이 우리를 정서적으로 끌어당기는 소위 연성적 힘이 미국보다 강하다는 점은 인정했다. ‘탈미 친중론’이 머리를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만 중국과 미국을 동격으로 취급하는 등거리 외교론은 그 본질이 ‘탈미’를 위해 내거는 중립주의의 일종이라고 심히 비판했다. 이처럼 한국 안보외교는 ‘용과 독수리’사이에서 진퇴유곡의 어려움을 겪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의 역사 조작도 그렇다. 1975년 판 ‘중국역사간편’은 홍콩의 친중 조양(朝陽)출판사가 펴낸 것이다. 이 책 제5장은 봉건사회인 수(隋)와 당(唐)을 기술하고 있는데 “수양제는 폭정 속에 고려(고구려) 침략전쟁을 발동하고 군인과 민간인 총 3백 수십 만 명을 동원하여, 민부들로 하여금 우마차를 준비하고 끌게 하니 행군 중에 수많은 희생자가 났다고 기록했다. 당나라가 아시아 각국과 활발하게 교류했다는 대목에서는 맨 먼저 ‘조선반도상의 신라’를 기록하고 있다. “신라와 당의 관계는 매우 친밀하여 신라가 사신과 유학생을 빈번하게 중국에 파견하였고, 수많은 고려(고구려) 및 백제의 음악가가 장안을 왕래하여 중국인들이 ‘고려악(高麗樂)’ 연주를 크게 환영했다”고 기록했다. 수·당시대 고려·신라·백제 3국을 인정하는 기록이다.

일찍이 중국의 실용파 1세대인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발해를 조선역사로 인정하면서, 고대사를 왜곡하는 중국인들을 대국 사문주의(沙文主義) 혹은 국수주의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공자 비판과 고구려사 조작

그러나 중국 문혁파는 역사를 진보와 반동의 2분 잣대로 혹독하게 검토하여 많은 내용을 뒤집었다. 그 중에는 “공자는 여색을 좋아했다(孔子好色)”는 내용이 있다. 공자가 실은 호색한(好色漢)이었다고 선봉에 서서 비판한 사람은 광쩌우의 중산대학 역사교수 양룽궈(楊榮國)이다. 그는 문혁파가 일으킨 비공(批孔) 운동의 급선봉에 섰다. 양룽궈의 이론은 이른바 유법(儒法)투쟁 주선론(主線論)으로 불렸다. 비공 운동이 끝맺음을 보는 단계에 이른 1974년에 그는 ‘공구기인’(孔丘其人)이라는 글을 통해 공로(孔老)가 병상에 있으면서 노애공(魯哀公)에게 제나라의 전성자(田成子)를 토벌하도록 간했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은 당시 병상에 누워 집무를 계속하던 저우언라이를 비유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현 중국의 4세대 지도부는 왜 고구려사의 조작운동을 벌이고 있는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집체학습 모임에서 연설한 부국강병론을 주목한다. 중국 4세대는 “부국강병책이 지난 100년 간 지속된 중국의 소망”임을 이념으로 삼고있다고 한다. 저우언라이와 덩샤오핑의 후예인 4세대 지도부의 국수주의화를 보는 것 같다.

<안병찬 경원대학교 초빙교수·언론학>

(내일신문 2004-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