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동북공정 ‘북 붕괴대비론’ 난무

“북, 중 앞잡이로 만들었어야”등
황당한 논리 인터넷 떠돌아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동북공정이 “북한 땅을 차지하기 위한 예비작업”이라는 주장을 담은 이메일이 인터넷을 통해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이 글의 출처는 서울대 정치학과의 인터넷 게시판으로 알려져 있으며 필자는 스스로 베이징대학에 유학한 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글은 ‘베이징대학 리앙첸 교수’란 인물이 ‘동북아시아 근대정치사’란 강의를 통해 “현재 중국학계의 만주사에 대한 대대적인 재규정 움직임은 앞으로 발생할 북한 영토의 주권 문제를 고려한 것”이라고 밝혔다고 주장한다. 또 △북한에 머잖아 군부 쿠데타가 발생할 것이고 △이들이 남한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중국 군사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으며 △중국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장기적으로 북한을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만드는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19일 베이징대 역사·정치·국제관계학과 등에 문의한 결과 리앙첸 또는 첸리앙, 량첸, 첸량 등 비슷한 이름의 교수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이 메일의 신빙성은 떨어진다. 그러나 중국에선 실제로 이 메일과 통하는 ‘북한 위협론’ 또는 ‘북한 붕괴 대비론’이 수없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먼저 ‘북한 위협론’은 94년 북한 핵 위기, 96년 홍수로 인한 북한 경제난 가중을 배경으로 등장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할 경우,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이 일차적인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북한 위협론’의 뼈대다. 시사평론가 황푸루는 지난 4월 <세기 중국>에 발표한 글을 통해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쉽게 끝내고 북한에 눈을 돌릴 경우 “북한이 선제행동을 취해 중국 동북지방의 몇몇 주요도시를 장악하고 그곳에 핵무기를 배치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럴 경우 중국은 “연변을 북한과 공동관리하고 북한군의 동북 장기주둔을 허락하며 매년 식량과 석유를 제공하는 내용의 조약을 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논리가 과장된 것이라는 비난에 대해 “미친 사람이 옆에서 굶고 있을 때 중국은 최악의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1993년 중국이 유엔 안보리의 북한 제재안에 반대하지 않고 기권했을 때 북한이 북·중 국경에서 중국 변방경찰 몇 명을 살상한 일”을 상기시켰다. 그는 또 “일부 조선(한국)인들은 동북이 예로부터 고구려의 영토라고 주장해왔다”며 “이들의 민족주의 정서는 쉽게 선동당한다”고 주장했다.

중국과 사회주의 우방인 북한조차 위협적인 존재라면 통일된 한반도는 중국에 더욱 강력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북한 붕괴 대비론’은 이런 관점에서 나온 논리다. 익명으로 중국 인터넷에 떠도는 ‘한반도 통일은 중국에 중대한 위협’이라는 글은 북한이 경제난 등 내부 붕괴로 한국에 흡수통일될 경우 “북의 핵무기·미사일과 남의 공업기초가 결합해 한반도가 인구 7천만명의 동북아 강국으로 떠오를 것”이며, “주한미군이 북상해 압록강변에 주둔할 수 있어 한국전쟁에서 치른 중국의 희생은 수포로 돌아간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글은 “한반도의 통일은 중국 변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단언하며 “한국전쟁 때의 중국 인민지원군이 북한에 장기 주둔하고 이민을 권하고 김일성을 허수아비로 만들며 끊임없이 북한을 중국에 동화시켜 중국의 앞잡이로 만들었어야 했다”는 주장를 펴고 있다. “동북공정이 북한을 겨냥한 것”이란 논리를 연상시키는 논조다. 또 시사평론가 위원다는 13일 <신군사>에 발표한 글을 통해 “고구려에 대한 한국의 지나친 열정은 동북지역 조선족의 분리주의적 움직임을 자극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시사평론가 리젠훙은 “한국이 동북의 역사가 한국사라고 주장할 경우 중국이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해선 안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동북공정의 추진 주체인 중국사회과학원 변경역사지리연구중심은 동북공정을 추진하면서 “한반도의 정세 변화가 중국 동북 변경지대의 안정에 끼칠 영향”이 중요한 연구 항목의 하나라고 밝혔다.

(한겨레신문 / 이상수 베이징특파원 2004-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