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양궁과 고구려벽화 수렵도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옛그림에 나타난 우리 민족의 생활모습과 정신을 찾아보라고 하면 아이들은 흥미롭게 빠져든다.

단원의 ‘글방’을 읽을 땐, 유달리 혼자 모자(갓)를 쓴 사람이 반장이 아닌지, 울고 있는 저 아이는 숙제를 안 해온 것은 아닌지, 몰래 누룽지를 먹은 것은 아닌지, 우리 조상들은 정말 흰옷을 즐겨 입었다고도 하고, 더 자세하게 들여다 본 아이는 책 그림에 세로로 그린 곡선을 보고서 옛날에는 글이 세로줄로 쓰여 졌다는 것도 찾아내며, 글방 어디에도 여자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남존여비가 확실히 존재했다고 흥분하기도 한다.

이렇게 그림 한 장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단원의 ‘씨름도’를 보고서는 누가 이길지 토론을 하기도 하고, 다음 차례가 누구인지 저들끼리 의견을 주고 받는다. 우리 그림 속에 우리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에 21세기 아이들이 많은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더운 여름 온통 아테네올림픽이 화제다. 어떤 신문 한 토막을 보았다. 한국 양궁의 놀라운 실력에 대해 한 외국인이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양궁이 있어 졸업에 큰 영향을 준다’는 말이 사실이냐고 묻는 말에 우리 양궁 관계자가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즐겁게 웃으며 대답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왜 고구려 무용총벽화 수렵도를 생각했을까? 말을 타고 달리며, 호랑이쯤은 강아지 한 마리 취급을 하며, 달리는 말 위에서 화살을 쏘는 호방한 그림 한 장. 국어 교과서에 설명문으로 나온 이 그림을 우리 아이들은 정말 좋아한다. 교과서 설명 외에 아이들이 찾은 이야기는 더 흥미진진하다.

백마를 타고 뒤를 돌아보며 활을 쏘는 사람이 무덤의 주인일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아이는 다른 사람에 비해 그림이 크고, 멋진 백마를 타고 있으며, 머리 장식이 화려하고, 달리는 말 위에서 뒤를 보며 큰 사슴을 잡으려 하기 때문이란다. 이쯤 되면, 다른 아이들은 고주몽의 뜻이 ‘활을 잘 쏘는 사람’임을 기억해내고 고구려의 생활모습과 고구려인의 호방한 성질을 이해하게 되며, “아하! 그래서 우리나라가 양궁에서 메달을 많이 따는구나!”라고 외치며 흥분하고 자랑스러워한다.

전 세계에 알려진 한국의 활솜씨, 그것은 우리의 핏속에 흐르는 고구려의 호방한 기상 때문은 아닐까? 지금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로 온 나라가 괴로운 이 때, 양궁의 메달 소식과 함께 고구려벽화 수렵도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고구려는 우리의 것이고, 그 증거는 우리의 핏속에 남아 흐르는 놀라운 정신력이라고.

<신의경 / 전남 고흥동초등학교 교사>

(한겨레신문 2004-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