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왜곡 대응 중국통 부족"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으로 한중관계가 수교 12년 만에 최대의 시련기에 접어들었다. 이럴 때 아쉬운 것이 공식적인 외교라인에서 다루기 어려운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 민간 차원의 네트워크다. 만일 그런 우호적 인맥이 양국간에 두텁게 형성돼 있다면 양국관계가 지금처럼 삐걱거리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한중 민간 교류단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크고 작은 단체가 여럿 있지만 가장 활발하고 영향력이 있는 단체는 '21세기 한중교류협회'라 할 수 있다. 이 협회는 2000년 11월 주룽지 전 중국 총리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양국 지도급 인사들이 양국의 우호증진을 위해 만든 사단법인이다. 회장은 김한규 전 총무처 장관이고 이수성-강영훈-이영덕-이헌재 전 국무총리, 김수한 전 국회의장, 박세직 전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김종량 한양대-정근모 호서대 총장 등 200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경쟁관계가 될 것"

특히 김 회장은 중국의 공식 초청을 가장 많이 받은 한국인이라 할 만하다. 1988년 서울장애인올림픽 실무부위원장을 맡으면서 시작된 그의 중국 나들이는 150회가 넘는다. 1년에 10회 이상 중국 정-관계 인사의 초청을 받은 셈이다.

김 회장은 "대중(對中)외교는 인간 관계가 중요하다"면서 "중국을 제대로 알고 중국내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중국통(通)' 인사가 없다는 게 이번 '고구려 역사전쟁' 대응에 나타난 중요한 문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구려사 편입 시도를 계기로 한중 관계의 질적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과거 10년이 협력관계였다면 앞으로 10년은 경쟁관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중국과 맺은 인연은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복사기와 자동차 각 100대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우호적 관계의 중요한 '자원'이다. 당시 국회의원으로 중국의 요청을 받은 김 회장은 백방으로 노력했고 결국 강영훈 총리의 도움을 받아 그 약속을 지켰다. 그가 그해 7월 아시안 게임의 자문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지원의 보답이 돌아왔다. 중국 정부는 김 회장 일행의 백두산 등정을 위해 국제선 비행기를 내주는 등 성의를 보였다고 한다. 또 1992년 한중 수교 때도 진시동 베이징 시장, 장백발 상무부시장 등 베이징 공산당 주요간부가 수교 이튿날인 8월 25일 베이징 시청에 태극기를 처음 게양하며 한국 외무장관 대신 김 회장을 초청했다. 김 회장은 "당시 한국인들에 대한 환대는 대단했다"고 말했다. 중국은 사실상 공산당이 지배하는 통치 구조지만 행정부와 군부, 전인대 등 3각 정립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김 회장은 "중국은 각각의 권력기구와 28개의 성(城)이 하나의 국가라고 보면 틀림없다"면서 "그런 복잡한 권력구조를 갖고 있는 나라에 단지 외교적 채널만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뉴스메이커 / 김경은 기자 2004-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