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연천 고구려유적

임진강변 석성-고분등 발굴 중단되며 농지로 방치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변 일대에 고구려 성(城)과 석실고분 등 고구려 유적들이 산재해 있으나 흙과 수풀로 덮여있거나 파헤쳐진채 훼손돼 보존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이들 고구려 유적은 대부분 농지로 개발되거나 발굴이 중단되면서 흉물스럽게 방치된 곳도 있다.

태풍영향으로 하루 종일 비가 내린 18일 오후 3시 민통선 이남인 연천군 장남면 자작리. 인근 원당리 마을에 이르기전 1㎞지점에 서 ‘호로고루성 100m’라는 안내판을 보고 인삼밭으로 통하는 비포장도로를 지나자 차광막으로 덮인 야트막한 구릉지가 나타났다. 고구려 남진의 전략요새로서 말타고 임진강을 건너는 여울목 지점을 통제하는 ‘호로고루성’(경기도 기념물 제174호) 이었다 . 가까이 가보니 성벽 규모가 길이 150여m, 높이 10~15m, 폭 20m 정도로 웅장했다. 축성 중간형태가 판축모양을 한 흙위에 석축을 덧붙여 쌓고 보축한 것으로 봐서 고구려 성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임진강변의 절벽을 이용한 이 삼각형모양의 성은 흙더미에 돼지풀 등의 수풀만 무성하고 성벽을 쌓았던 돌이 무너져 있는 등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발굴이 중단되면서 성벽을 덮은 검은 차광막 사이로 네모반듯하게 쌓은 현무암과 화강암들이 노출돼 있고 하단부 성토에는 빗물이 흘러들어갔다. 성 입구는 성벽이 훼손돼 성벽 단면이 노출돼 있는 것은 물론 성내부 성토 1m 정도가 잘려나간 상태로 버섯재 배시설이 들어서 있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성벽 정상부에는 참호같은 구덩이가 파여 있으며 일부 석축을 이루는 돌무더기들은 복원을 위해 진입로 옆에 치워져 있다.

이곳을 지나가던 김용욱(17·경민고 3년)군은 “중국의 고구려 역사왜곡에 강력히 항의하면서도 정작 국내 유적은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다른 고구려 유적지인 미산면 동이리 당포성과 전곡읍 은대리은 대리성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임진강이 굽이쳐 흐르는 절벽 위에 석축으로 축조된 당포성은 남쪽 진입로 성벽이 일부 잘려나가 단면이 드러나 있었다.

석축이 잘려나간 조그만 언덕위에서 풀을 깎던 한 주민은 “성벽 기둥을 세운듯한 큰 구멍이 있고 다양한 적갈색 문양의 기와조각이 널려있다”며 “지난해 여름 발굴작업이 한창이더니 올해는 예산부족으로 사유지를 매입하지 못해 발굴이 중단됐다”고 말 했다.

지난해 발굴이 중단된 이후 출입구는 흙이 토굴처럼 파헤쳐져 있고, 농경지간척과 농로공사로 외성벽이 상당부분 없어진 성내부는 아예 밭으로 사용되고 있다. 측면과 남쪽의 성벽은 10m 이상 돌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석축이 드러나 있으나 아직도 100m가 넘는 구간의 성벽은 발굴되지 않은채 잡초와 흙더미속에 묻혀 있다 .

전곡읍내 한탄강변에 위치한 은대리성은 철망으로 둘러쳐진 채 소나무와 밤나무가 우거져 있다. 철망안쪽을 자세히 보니 흙으로 쌓은 토축 아래로 현무암 석축이 100m 정도 나란히 동서방향으로 쌓여있다. 동벽의 남쪽 부분은 민가의 담장으로 사용되면서 성벽의 흔적이 사라졌고 북쪽 일부는 무너져 내려앉아 높이가 매우 낮아 보였다.

고구려계 고분으로 알려진 전곡읍 신답리의 횡혈식 석실분도 발굴 후에 문화재로 지정하지 않는등 무관심속에 방치돼 있었다.

직경 20여m 의 봉분위에는 잡초들만 무성하고 고분 둘레로 외부인의 접근을 막기위해 쳐놓은 줄은 조잡했다. 몇년전만 해도 고분주변에서 화살촉이나 토기 등을 주울 수 있었다고 주민들은 설명한다.

주민 고명심(68)씨는 “땅위에 만든 이 석실은 천장구조상 고구려시대 장군이나 성주의 묘라는 얘기를 동네어른들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며 “유물은 도굴돼 없어졌지만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 묘역만이라도 국가사적지로 보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조사를 나온 연천군 문화담당자는 “고구려유적 발굴보존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토지매입비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토지 매입과 추가 발굴을 위해 경기도에 신청한 52억원이 빠른 시일내에 지원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 오명근 기자 2004-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