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고구려사 시민교육 책자 발간 의미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가 비치를 의무화한 것으로 확인된 시민교육책자 '集安 市民手冊'(지안 시민수책.이하 수책)의 의미는 무엇보다 중국 정부의 고구려사 왜곡이 다음 단계로 나아갔음을 보여주는 첫 사례라는 데에 있다.

최근 한-중 외교 전쟁으로 치달으며 사회적 관심이 새삼 높아졌지만, 중국 정부의 고구려사 왜곡은 한두 해에 걸쳐 진행된 일이 아니다.

그 뿌리는 중국의 소수민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90년대 초반에는 고구려사가 중국의 변방사라는 주장이 이미 나오기 시작했다.

다만 2002년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이 추진되며 학술적으로 고구려사를 자국사에 편입하려는 움직임이 노골적으로 가시화됐다. 최근 우리 정부가 이를 외교적으로 문제삼으면서 관련 사안들이 봇물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규정한 수책이 시민 교육용으로 의무 배포된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우리가 학술, 정치적 차원에서 중국의 역사 왜곡을 거론하는 사이 중국측은 이미 왜곡된 고구려사를 기정 사실로 만드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수책은 고구려가 중국 동북지방 소수민족 정권이며 주나라에 조공을 바친 이래 중국 역대 왕조에 속했다는, 학술적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동북공정의 주요 내용을 '요해고구려'(了解高句麗)라는 별도의 장을 할애해 설명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우리측이 역사 왜곡 움직임 자체를 문제삼고 있는 사이, 이러한 내용을 일반 시민들이 의무적으로 숙지하게 함으로써 고구려사의 중국사 편입을 공고히 하는 단계로 나아간 것이다.

더구나 지안은 광개토왕비를 비롯해 중국내 주요 고구려 유적이 대거 위치한 핵심 도시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크다.

지안에는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인 국내성과 환도산성이 있으며, 광개토왕비를 비롯해 장군총, 태왕릉 등 전성기 고구려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유적들이 밀집해 있다.

고구려 문화의 핵심지를 거점삼아 왜곡된 고구려사가 일반인과 관광객에게 전파 될 경우, 그 파급력은 압도적으로 클 수밖에 없으며 상징적 의미도 무시할 수 없다.

수책과 함께 고구려의 첫번째 수도 환련(桓仁.졸본)에서도 오녀산성 등을 중심으로 동북공정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 홍보 책자가 발간된 것이 확인됨으로써 중국측의 이러한 거점 전략은 한층 명확하게 드러난다.

결국 이번에 확인된 수책의 발간 사실은 중국 정부가 학술 및 정치 차원에서 고구려사의 자국사 편입 움직임을 어느 정도 본궤도에 올려놓고 다음 수순으로 나가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여전히 학술.외교적 문제제기에 머물고 있는 우리 사회에 새삼 경종을 울리며, 고구려사 문제에 있어 적절한 수준에서 대응책 모색이 시급함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연합뉴스 / 김경희 기자 2004-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