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은 ‘민족적 포퓰리스트’인가?
어설픈 글쓰기로 惑世誣民…과대망상 의심돼

필자가 도올을 접한 것은 87년 겨울 감옥에서였다. 도올의 강의를 들었던 옆방의 후배가 도올의 저서 ‘여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해서 읽게 되었다. 물론 후배는 그 책을 주면서, ‘현학적인 사람’이며 ‘괴짜 교수’이기 때문에 그것을 감안해서 읽으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읽었던 것이 도올의 ‘여자란 무엇인가’였다. 제목과는 달리 자신이 고려대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하며 적어 논 강의 노트를 토대로 집필한 동양철학 관련 서적이었다. 약간 현학적인 것들이 거슬리긴 했지만, 처음 대목에선 내가 호기심으로만 갖고 있었던 동양철학과 변증법적인 철학체계를 볼 수 있어서 책 한 권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하지만, 처음 한 50쪽은 그럭저럭 읽을 만한 대목과 필자가 모르는 것을 깨우쳐 주는 것도 있는 듯하더니, 이내 같은 말들이 반복되고, 통속적인 지식 나부랭이를 나열하는 수준이 되었다. 그때부터 도올에 대한 나의 인식은 두 단어로 집약된다. 바로 ‘현학’(玄學)과 ‘용두사미’(龍頭蛇尾)다.

그런 그가 대학교수직을 그만두고 원광대 한의학과에 입학하는 것을 보며, 용기와 도전정신은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필자가 아는 한의학 교수에게서 도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기회가 있었는데, 별로 ‘자질’이 없다는 소리였다. 그래도 그의 용기와 도전정신은 높이 사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우진 않았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한의학 공부를 팽개치고, 이번엔 기자로, 언론인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EBS를 통해 동양철학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다. 그의 ‘글 쓰기’와 ‘강의’는 도올에 대해 보다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도올은 필자의 첫 번째 인식을 바꾸진 못했다. ‘현학’과 ‘용두사미’...그런 그가 노무현 정권 등장을 전후로 친여적 입장에서 정치적 발언 수위를 높이더니, 이번엔 모 인터넷 신문을 통해 민족의 운명과 행정수도 이전문제 등을 가지고 ‘통성기도문’을 쓰고 있다.

그 글을 읽으며 필자는 “모르면 가만히 있지, 낄 데 안 낄 데 다 끼어 들어 훈수를 두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수십년, 아니 평생을 통해 이룩해온 분야에, 전혀 다른 분야에 있다가 뒤늦게 끼여든 신출내기 지식분자가 할말 못할말 가리지 않고 쏟아내는 도올의 태도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분야 전문가 무시하기’와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증’처럼 느껴진다.

먼저 8월 16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11월 미 대선 전에 남북정상 만나라’는 글을 보자.

필자는 그가 가지고 있는 미국식 발전모델에 대한 거부감이 어떤 것인지, 또 잘된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그가 생각하는 세계 역사의 흐름에 대해 관심도 없지만, 그건 그 나름대로의 세계관이기 때문에 거론하고 싶지 않다. 또한 도올의 ‘현학’에 변죽을 맞추는 꼴이 되는 것 같아, 관심 두기가 싫다. .

그래서 핵심만 보기로 하자. 그는 중국이 양안관계와 한반도라는 두 개의 전선을 형성할 능력이 안되고, 미국에게 전략적 요충지로써의 한반도의 중요성이 상실되는 지금 11월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잽싸게’ 중립적 평화지대로 탈출하자는 논리를 펴고있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에서 양안관계의 긴장이 높아지고, 미국에겐 미일동맹이 중시되고, 한반도의 중요성이 상실되는 지금이 적기라는 말도 덧붙인다.

그 글을 읽으며 필자는 그의 아마추어 수준의 생각과 무모한 용기에 탄복할 지경이었다. 중동 다음으로 세계 어느 곳보다 치열한 각축전이 전개되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에서 저런 아마추어적인 수준의 인식을 가지고 훈수를 하려들다니...그 용기가 가상하기만 하다.

지금 중국이 고구려사 왜곡을 하는 이유는 중국의 半식민상태로 전락한 북한이 무너질 경우까지 대비한 포석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중국이 한반도에 대한 관심이 무뎌지리라는 발상을 할 수 있다니 참으로 놀랍기 그지없다. 또한 미국과 일본이 중국과의 각축전을 벌이고 있고, 이것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 분명한 사실인데, 어찌 그들의 관심을 벗어난 중립적 평화지대가 가능다는 말인가? 그런 발상에 국가의 운명을 맡겨보자고 하는 제안을 하며,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선지자인 냥 ‘통성기도문’을 쓰다니...

아무래도 도올이 도가사상에 너무 심취해서 존재하지도 않는 ‘십승지지’(十勝之地)를 찾아다니는 사람처럼 여겨진다. 그래도 그렇지, 도올이 갈망하는 ‘십승지지’를 찾아서 대한민국의 운명을 맡겨보자고 하니, 혹세무민을 해도 너무 심하지 않은가?

두 번째 8월 17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줄다리기 노름일랑 당장 그만 두라’는 글을 보자.

그는 북한의 핵이 실체가 없는 ‘북한이 빌미를 제공하고, 국제역학관계 속에서 발전해온 언술적 이슈’라고 단정한다. 그 이유로 그는 북한이 핵실험을 한 증거가 없다는 것을 거론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주장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핵무기를 포함한 전면전이 아니라, 장사정포 등 재래식 무기를 사용하는 국지전일 것이기 때문에 ‘북한의 핵문제에 그다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식의 발언까지 하고 있다.

도대체 핵실험 여부가 핵무기 보유여부를 규정짓는다니, 이 무슨 궤변인가? 현대사회에서 핵실험 없이도 얼마든지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다. 핵실험은 핵무기 제조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하는 필수적 과정이 아니라, 핵무기 확인과정이기 때문에 핵보유의 필요조건일 뿐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이 정도는 이미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그런데도 북한의 실험 여부를 통해 핵무기 존재여부를 판단하려 들다니, 그런 전제를 토대로 북한 핵위기 사태를 판단하려 하다니...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그런 판단을 하니, 실체도 없고, 그다지 중요치도 않는데 북한의 핵을 미국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는 식의 생각을 하게 되는 것 아닌가? 북한이 시인하고, 국제사회에서 공인되다시피 한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허무맹랑한 낭설로 부인하려는 도올의 용기는 경이롭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하다.

북한의 핵무기는 동북아에 엄청난 재앙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근거로 미, 일, 중의 개입을 차단한 채, 돈을 확보하기 위해 핵확산을 기도할 것이며, 동포인 남한에 대해 공갈협박과 금품갈취를 끊임없이 자행할 것이다. 그것이 자생력이 무너지고 약탈국가로 전락한 북한의 생존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행위가 예상되는데, 강 건너 불 구경하듯이 두고볼 강대국이 있을까? 미국이 과연 그럴 것이며, 일본이 과연 그럴까? 북한에 자극을 받은 일본이 핵무기 보유와 자위적 무장을 강화할 것이며, 제3세계 반미국가들이 너도나도 핵무장을 서둘 것이다. 또한 중국과 대치하고 있는 대만도 핵무기를 개발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 미국이 신경쓰지 않고, 중국이 강 건너 불 구경하듯이 북한 핵문제를 내버려둘까?

그런데도 북한 핵에 관심 쓸 필요 없이 북한의 재래식 장사정포의 사거리에서만 벗어나는 수도이전 계책을 강구하자고? 그러면, 북한은 서울에 올인하는 군사전략을 변경할 수밖에 없다고 하다니?

이 대목에 들어선 헛웃음밖에 안나온다. 아니, 지방분권형 발전과 경제중심도시로의 서울의 발전을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것이 노무현정권의 수도이전 논리인데, 그 경제중심도시에 대해 북한이 어떠한 위협도 안하고 포기할 것이라는 순진한 발상을 하다니? 북한의 군사전략이 남한의 정부기관에 올인되어 있다는 도올의 단정적 가설을 보며 ‘하이 코메디’의 한 토막을 접하는 느낌이다.

지금 한국은 서울과 수도권에 대해 국가의 사활을 걸고 안전을 확보해도 국제자본의 투자가 이뤄질지 안 이뤄질지 모르는 판국이다. 그런데, 수도는 이전되어 행정기관과 집권세력이 피해버리고, 북한의 장사정포 사거리 안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위험천만한 곳에 누가 투자를 할지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으면 싶다. 그런 생각조차 못하면서 서해안 개발과 미래를 이야기하다니, 아무리 아마추어라고 해도 그런 무모한 발상은 하지 않는다.

위에서 두 가지를 검토해 보았다. 지금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은 자명하다. 도올처럼 치열한 국제관계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우리끼리 잘 살아보자’는 식의 순진무구한 발상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미래에 그런 ‘십승지지’는 없다. 현실이 어렵다보니 자꾸 그런 도피적인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 그럴수록 인생 망가지듯이 대한민국의 운명도 망가지게 되어 있다. 한마디로 주변 강대국이 그렇게 놔두지도, 그처럼 호락호락 하지도 않다.

지금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은 국제관계의 치열한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이익이 무엇인가를 보며 한발 한발 최선을 다해 전진하고 또 전진하는 길 외엔 대안이 없다. 어설픈 민족의식을 가지고 무모하게 행동하다간 그야말로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얼치기 민족주의로 무장한 포퓰리스트들이 국민들을 함부로 선동하는 것이다. 도올의 글에서 민족적 포퓰리스트의 모습을 본다. 역사상 대표적인 민족적 포퓰리스트들이 히틀러, 뭇솔리니 등이었다는 것을 상기해 보라!

수도이전 문제도 마찬가지다. 철저히 경제적 이익과 국리민복의 입장에서 따져가며 풀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국민적 합의다. 국민적 합의 없이 수도이전문제를 강행한다면, 그것은 강행된다 하더라도 국가적 재앙이 될 것이다.

가뜩이나 주름살이 깊어 가는 한국경제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게 되고, 자칫 한국 내 들어온 외국자본마저 모두 내쫓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더욱이 현 집권세력이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의 부정적인 면만 보는데, 이는 편향된 생각이다. 영국도 런던 중심으로 이 정도로 집중되어있지만, 그 누구도 런던 중심이기 때문에 영국의 발전이 더디다고 진단하지 않았다.

지금 인구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서 경제발전이 가로막히고 있는 것이 아니라, 70년대의 ‘영국병’보다 깊어진 ‘한국병’과 무능력한 노무현 정권을 둘러싸고 있는 ‘민족적 포퓰리즘’ 때문이라는 것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우리가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발전해 왔다. 처음 건국할 당시 부족했던 것도 시간이 지나며 채워졌고, 또 건설과정 속에서 부정적인 것도, 국민의 노력과 희생으로 극복해 왔다. 그렇게 정체성은 발전되어 왔고, 정통성은 성장해 왔다.

그런데, 그동안 주변에만 있었던 현 집권세력과 얼치기 지식인들이, 지금까지의 성과에 주목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역사과정에서 배태된 부정적인 것에 주목하여 역사를 거꾸로 쓰려하고 있다. 민족적 정서와 포퓰리즘을 결합하여 국민과 국가를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을 도올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진영 / 시사평론가>

(업코리아 2004-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