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지 ? "

사랑은 눈으로부터 시작된다. 눈에 콩깍지가 씌워져 사랑하는 사람의 흠은 가려지고, 멋있고 예쁜 모습은 더욱 돋보이게 마련이다. 사랑의 콩깍지는 아름답지만 그 콩깍지가 특정 신념에 씌워지면 문제가 달라진다.

추억의 명화 '콰이강의 다리'와 최근 히트작 '더 록'은 바로 그런 콩깍지, 즉 자기확신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을 극적으로 그렸다.

'보기 대령 행진곡'의 경쾌한 휘파람 소리가 인상적인 '콰이강의 다리'는 일본군 포로가 된 영국군 공병대장 니컬슨 중령의 자존심 싸움으로부터 시작된다. 일본군은 연합군 포로를 동원해 다리 건설공사에 나선다. 포로 중 최상급자인 니컬슨은 일본군 부대장과 담판해 공사 전반의 책임을 자청한다. 니컬슨은 "비록 적을 위한 공사일 망정 이것은 우리의 힘으로 놓아지는 우리의 다리다"라고 포로들을 독려한다. 적군의 지휘를 받지 않겠다는 자존심의 발로이자, 연합군의 우수성을 과시하겠다는 엉뚱한 우월의식의 작용이다. 어차피 강제 동원될 상황이라 그의 다리 건설 협력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그가 다리 폭파에 나선 영국군 유격대와 맞닥뜨렸을 때다. 자신이 영국군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아군 유격대의 폭파시도를 필사적으로 저지한다. '우리가 만든 다리'라는 자기 성취감의 콩깍지에 씌워져 자신이 현재 이적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더 록'에선 잘못된 개인의 신념과 그것이 부를 수 있는 엄청난 위험성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미 해병단장 허멜 장군은 극비의 군사작전 수행 중 숨진 병사를 위해 보상을 해달라고 호소한다. 호소가 묵살되자 허멜은 '정의의 회복'을 선언하며 해병 부하들을 끌고 과거 형무소로 악명높았던 샌프란시스코의 알카트라즈섬을 장악한다. 관광객 81명을 인질로 억류한 채 정부 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화학가스 미사일을 샌프란시스코로 발사하겠다고 경고한다. 자기가 믿고 있는 정의에 집착한 나머지 수많은 시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테러까지도 정당화한다.

보편적 진리나 상식과 충돌하는 자기확신.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그 비슷한 냄새가 맡아진다. 수도 이전 논란에서부터 사학개혁.언론개혁.사법개혁.국가보안법 개폐 논란에 이르기까지 자기만 옳다는 외골수 신념들이 흘러 넘친다. 신념이 나쁜 게 아니라 자기 신념에 포로가 돼 다른 중요한 가치들을 훼손시키는 게 우려스러운 것이다. 특히 신주류 세력의 기존 질서 파괴작업이 그렇다. 그들이 '개혁'을 외쳐대는 사이 사회는 온통 갈등과 분열과 혼란의 뒤범벅이 돼버리지 않았는가. 경제는 끝모르게 가라앉는데 국정의 핵심 화두를 과거사 청산 쪽에만 집중시키고 있는 정부.여당의 태도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개혁의 콩깍지, 과거사 콩깍지에 눈이 먼 게 아니라면 이럴 수 있을까. 신기남 의장의 코미디야말로 자신의 발목을 찍는지도 깨닫지 못한 또 다른 콩깍지 사례다.

개혁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교각살우(矯角殺牛)의 바보짓을 피하자는 것이다. 갈등을 봉합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방향으로 추진해야지,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소뿔 고치려다 소잡는 격이 되고 만다. 과거사 청산도 마찬가지다. 한번은 거쳐야할 과정이라는 데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본다. 그러나 정부나 국회가 이 문제에만 매달리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처칠은 "오늘과 과거가 싸우면 미래가 죽는다"고 설파한 바 있다.

영화에서 니컬슨과 허멜은 죽기 직전 콩깍지가 벗겨진다. 그러면서 내뱉는 독백이 똑같다. What have I done? -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우리의 신념가들도 한번쯤 자문해 보길 바란다.

(중앙일보 / 허남진 논설위원실장 2004-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