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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를 지키는 길
내 집 대문 앞에 서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들고 이 집은 틀림없이 내 집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어처구니없고 짜증스러운 일이다. 일본이 독도를
저희들의 땅 다케시마(竹島)라고 주장할 때마다 우리는 그 짜증스러운 짓을 되풀이한다. 이번에는 중국이 고구려를 가지고 우리에게 꼭같은 고역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는 나라 밖을 향해 고구려는 틀림없이 '코리아의 고구려'라고 목청을 높여야 한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외국인들이 들으면
독도와 고구려사가 한.중.일 간에 분쟁거리라도 된 문제로 오해할 수 있다.
*** 팍스 시니카(Pax Sinica) 꿈꿔
고구려사를 탈취하려는 중국의 의도에 관한 한 이해가 부족하기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왜 갑자기 고구려사를 훔쳐가려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팍스 시니카(Pax Sinica)라는 중국의 21세기 원대한 야망에 숨어 있다.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중국의 평화,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다.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에 편입해 동북부 지방 주민의 애국심과 중화사상을 확실히 다져두자는 취지의 동북공정은 팍스
시니카라는 큰그림의 중요한 한 축이다.
중국은 동북공정과 함께 단대(斷代) 공정과 탐원(探源)공정도 추진한다. 단대공정은 고대 국가들인 하.은.주(夏.殷.周) 이전의
삼황오제(三皇五帝)의 마지막 두 임금 요(堯)와 순(舜)을 신화에서 끌어내 정사(正史)에 편입시키는 프로젝트다. 거기 필요한 사실(史實)을 찾는
고고학 발굴이 탐원공정이다. 성공하면 기원전 1700년대 은왕조로 시작되는, 실재(實在)가 확인된 중국 역사는 2000년 이상 앞당겨져
3000년대에 메소포타미아(이라크)에 꽃핀 인류 최고(最古)의 수메르 문명을 앞지른다.
중국은 그것이 팍스 시니카의 정신적 인프라가 되는 중화사상과 민족적 소속감을 드높일 수 있다고 기대한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00년에 1조달러를 훨씬 넘어 세계 7위, 구매력은 4조5천억달러로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가 됐다.
1978년 개혁.개방 이래 20년간 중국의 GDP 성장은 연평균 9% 이상을 기록해 왔다. 세계은행은 2020년이 되면 중국은 미국을 앞질러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2025년이나 2030년이 되면 중국이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군사적으로도 수퍼파워의 지위를
확보한다는 것이 일반적 전망이다.
사정이 이렇게 호전되자 중국인의 의식에는 18세기부터 서양 열강과 일본에 침탈당한 역사를 보상받고 21세기를 중국의 세기로 만들겠다는 부푼
꿈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것 같다. 먼저 중국문명에 세계 최고(最古)의 지위를 부여해 중국인의 프라이드와 애국심을 다지기 위해 고대사부터 다시
쓴다. 동북공정의 연장선상에는 인도.러시아.몽골.베트남과의 방대한 접경지대에 걸친 역사를 정비하는 작업도 들어 있다.
동북공정 및 고대사 단대공정과 탐원공정은 중국판 역사 바로잡기의 차원을 훨씬 넘어 역사를 파괴하는 반(反) 역사적인 큰 작업이다. 역사를
팍스 시니카의 시녀로 만들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동북공정을 우선적으로 다루는 것은 중국 동북 3성에 조선족이 많이 산다는 현실과, 한국이
통일되면 조선족의 대규모 중국 이탈이 있고, 그래서 동북 3성의 안정이 위협받을 수도 있음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 민족적 흥분으로 해결되진 않아
동북공정이 중국 3대 공정의 하나인 이상 민족적 히스테리나 중국에 할 말도 못하는 저자세 외교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북핵 문제에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중국은 국가이익을 위해 북핵 해결에 참여한다. 역사학자 E H 카는 사실을 떠난 역사는 뿌리도 쓸모도 없다고 말했다. 중국의
역사 변조는 결국 모래 위에 쌓는 성이 되고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중국의 역사 변조에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나라들, 중국의 역사 파괴를 혐오할 전 세계 양심적인 역사학자들과의 조용한 학문적.문화적 공조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인이 된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아니라도 중국에는 정부의 느닷없는 역사 변조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학자들과 여론이 있을
것이다.
(중앙일보 / 김영희 국제전문 대기자 200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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