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언론도 우려하는 수도 이전

정부가 서둘러 신행정수도 최종입지를 결정했지만 여전히 반대 여론이 거세다. 반대 여론은 지난 두 달간 명분, 실효성, 입지, 비용, 안보, 국민적 합의 등 사안별 문제점에 대한 지적에 이어 전통 풍수(風水)에 입각한 새 입지의 취약성과 망국(亡國)으로 연결된 고구려와 백제의 무모한 남천(南遷) 및 정략적 목적으로 천도를 도모한 궁예, 묘청의 몰락 등 역사적 문제 제기로 발전했다. 일각에서는 아예 수도 이전을 현 정부의 정체성 문제로까지 비화시키고 있다.

이런 마당에 외국의 권위 있는 언론이 경제적 관점에서 한국의 수도 이전에 대한 우려를 표시한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이해나 정략의 당사자가 아닌 데다, 한국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 내지 퇴진을 염두에 두었을 리도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엄청난 이전비가 경제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수도 이전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나라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또 “서울의 독점적 지위를 끝내기 위한 계획들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거대 제조 금융회사들이 새 수도로 본사를 이전할 것 같지 않다”는 전망도 내놨다.

미국의 블룸버그통신은 칼럼니스트의 글을 통해 “경제가 3년 이래 가장 비관적인데 왜 하필 지금이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새 수도를 건설하기보다 지금의 수도를 더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하고 있다.

정부는 겸허하게 외국 언론의 지적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그동안 친정부적 입장을 취해 온 국내 언론도 더 많은 합의를 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 않는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려내고 순서와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요 국정의 지혜다.

(동아일보 2004-8-17)

블룸버그 “수도이전보다 서울 활용 필요…왜 서두르나”

미국의 경제 전문 통신사인 블룸버그(www.bloomberg.com)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16일 한국 경제가 직면한 난관을 지적하면서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수도 이전 시기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자료들은 소비자와 기업의 경제 전망이 3년 내 가장 비관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이는 단기간에 국내 경기 회복이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면서 “수도 이전은 장기적으로 의미가 있고 수년간 국내총생산을 증가시킬 수도 있겠지만 왜 지금이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다음은 칼럼 요약.

노무현 대통령은 논란이 되고 있는 수도 이전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한국 정부는 390억달러를 들여 수도를 이전할 준비를 갖췄다. 하지만 ‘한국이 당장 처리해야할 더 크고 시급한 문제는 없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노 대통령은 부의 재분배에 힘을 쏟고 있고 수도 이전으로 그런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각종 자료들은 소비자와 기업의 경제 전망이 3년 내 가장 비관적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조만간 국내 경기가 회복되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절반 이상이 수도 이전에 반대하지만 노 대통령은 이를 강행하고 있다. 한나라당 지도자들은 이전 비용이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의 주장보다 배가 들 것이라며 수도 이전이 처치 곤란한 문젯거리가 될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런 모든 상황은 투자자들에게 특히 단기적으로 큰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수도 이전은 장기적으로는 의미가 있고 수년간 국내총생산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왜 지금 추진해야 하는가? 한국이 통일 되면 수도를 다시 더 북쪽으로 이전할 필요는 없는가?

투자자들은 한국 정부가 중앙은행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금리를 3.5%로 낮춰 성장을 촉진하려 하지만 한국에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성장이 아니라 ‘더 나은’ 성장이다.

한국은 경제성장을 국민의 생활수준을 높이고 기업들이 미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도록 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활용할 필요가 있다.

노 대통령은 수도 이전이 서울 외 지역의 생활수준 향상, 그리고 기업과 외국인의 투자 다양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한국은 수도를 건설하기보다 지금의 수도를 더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동아일보 / 김정안 기자 2004-8-16)

英 이코노미스트 인터넷판 "한국 수도이전, 글세…"

"결정과정 관심 못끌어 엄청난 비용, 경제위협"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인터넷판은 한국의 수도이전 논란이 여러가지 좋은 이유가 있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그다지 훌륭한 생각은 아니라고 13일 보도했다. 다음은 보도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수도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1970년대부터 거론됐던 수도이전은 타당성이 있다. 거대한 수도권은 이미 과밀상태다. 인구 4800만의 절반 가량이 수도권에 집중해 있다.

타지역에 비해 월등한 서울의 규모가 나머지 국토 개발을 저해하고 있다. 또 적대적인 북한과의 군사분계선이 서울과 우려할 만큼 근접해 있어 북한이 침략할 경우, 한국 정부를 순식간에 황폐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수도이전 결정과정은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비록 이전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14세기 이후 줄곧 서울이 수도였기 때문에 국민들은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지난 11일 정부가 수도이전 계획을 강행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야당은 예산안 심의 자체를 봉쇄하겠다고 나섰고, 시민단체들은 헌법소원을 통해 반대하고 있다. 이들의 반대이유는 450억달러 규모의 엄청난 비용이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수도이전은 국가예산 범위를 크게 넘어서는 경향이 있다. 중앙 아메리카의 벨리즈는 1960~70년대 신수도 벨모판을 건설하려다 비용이 당초 예상 규모의 4배로 치솟는 바람에 더욱 가난해졌다.

호주의 캔버라 건설계획도 1911년 처음 시작돼 1980년대까지 지연됐고, 브라질리아 건설도 1950년대 후반 3년 만에 광적으로 추진됐지만, 막대한 규모의 비용은 국가를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채무를 가중시켰다.

말레이시아는 1990년대 큰 비용을 들여 푸트라자야에 새 수도를 건설하려다 경제위기가 심화되자, 당시 마하티르 무하마드 수상이 미래형 멀티미디어 도시 건설계획으로 이를 축소했다.

물론 정부주도의 거대한 프로젝트들로 급속히 성장한 ‘아시아의 호랑이’ 한국은 유럽이나 북미보다는 덜 회의적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수도이전이 지역개발을 돕는 데 성공하리라는 것엔 의심의 여지가 있다.

나이지리아가 막대한 돈을 들여 1981년 건축을 시작하고서도 아직 마무리짓지 못한 아부자는 거주 인구를 유치하는 데 실패했다.

또 서울의 독점적 지위를 끝내기 위한 계획들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거대 제조·금융 회사들이 새 수도로 본부를 이전할 것 같지 않다.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나 브라질의 상파울루 등도 행정수도는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지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 / 최승호 기자 2004-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