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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봉체제` 중세 문명권의 외교관례”
정년퇴임 앞두고 회고록 낸 조동일 교수
한·중간에 ‘냉전(冷戰)’이 상당히 오랫동안 진행돼왔습니 다. 그런데 우리 국민 대다수는
냉전이 진행되고 있는 사실도 잘 모르다가 갑자기 ‘열전(熱戰)’이 터지니까 충분히 연구도 안된 상태에서 신중치 못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요. 마치
‘붉은 악마 ’가 응원을 접고 자신들이 직접 축구를 하려고 운동장에 뛰어?? 형국이라고나 할까요. 중국은 한국 외에 베트남, 태국 등과도
역사논쟁을 벌여왔는데, 우리는 그런 내용을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우리보다 조용하면서도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으며 북한이 이번에 직접
나서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죠.” 이달말로 서울대를 정년퇴임하면서 지난 36년간의 대학교수 생활을 회고하는 책 ‘학문에 바친 나날
되돌아보며’(지식산업사)를 75명의 제자들과 함께 펴낸 조동일 교수를 지난 13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 학계에서 ‘동아시아사〓중국사’가 아닌 한·중·일·베트남 등 동아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동아시아사란 개념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와함께 우리 학계는 논문을 쓰면 발표 하기에 급급한데 정작 중요한 문제는 발표하지 않고 문닫아 놓고 연구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지난 1968년 계명대 전임강사로 대학교수 생활을 출발한 조 교수는 영남대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등을 거치면서 자신의 전공인 구비문학에
국한되지 않고 고전문학과 한국문학, 동아시아문학, 세계문학으로 관심을 넓혀왔으며, 최근에는 문(文)·사(史)·철( 哲)을 아우르는 인문학
전반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우리 시대 흔치않은 연구자 중 한 사람이다. ‘한국문학통사’(전6권)와 세계문학사 시리즈 등 그가 지금까지
발표한 50권의 저술과 200 편 남짓의 논문 중에는 고구려사가 자국사라는 중국의 논리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도 있다. 지난 99년
출간한 저서 ‘문명권의 동질성과 이질성’(지식산업사)에 실린 논문 ‘책봉체제’ 가 바로 그것이다.
중국은 고구려왕이 중국 황제(천자)의 책봉을 받았기 때문에 독립국이 아닌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조 교수의
비교연구에 따르면 책봉체제는 기독교와 유교, 이슬람 문명권에 모두 존재한 중세의 공통적인 국제관계 체제였다. 그는 “동아시아 모든 나라가
중국의 책봉을 받았는데, 중국의 주장대로라면 일본도 중국의 속국이 돼버린다”?“이처럼 세계의 책봉체제를 광범위하게 연구하거나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극복할 논리를 발견할 수 있음에도 그동안 우리 국사학계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베트남이 명나라의 침공을 물리치고 다시 국교를 재개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능동적으로 명의 책봉을 받은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당시 베트남 사서에는 (중국의 천자가 자신들의) 황제를 봉하여 안남왕으로 삼았다는 ‘봉제위안남왕(封帝爲安南王) ’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책봉이 중국의 속국이라는 정치적 의미가 아닌 동아시아 유교문명권의 일원으로서 정당한 위치를 인정받는 일종의 종교적 상징 또는 의례였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사실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것도 오늘날의 영역판 도로 과거사를 재단하는 행위로, 중앙과 지방정부, 외국을 각각
‘본기(本紀)’와 ‘세가(世家)’, ‘열전(列傳)’에 기록해 구분한 사마천의 ‘사기(史記)’와 배치되는 만큼 중국은 고구려사를 중국사라고
말하기 전에 사마천을 비롯한 중국의 역사가들과 먼저 싸워야 할 입장에 처해 있다. 다만 중국이 고구려의 강역과 인구의 상당수를 계승한 사실
자체는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조 교수의 견해다. “역사논쟁은 승패가 나지 않는 만큼 핏대를 올리기보다는 상생(相生)의 길을 찾아야 하며, 이를
위해 베트남을 포함한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경험을 차분하게 보편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서울대를 정년퇴임하고 계명대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기는 조 교수는 다음 학기부터 ‘세계·지방화 시대 한국학’이란 주제로 10학기(5년)동안 강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일반인 등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공개강의 형태로 진행되며 주제도 국문학에 한정되지 않고 이번 고구려사 문제를 포함해 한국학 전반을 다룬다. 매회 강의마다 A4 용지
10장 정도의 원고를 써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 누구나 볼 수 있게 할 계획이며, 앞으로 강의원고 집필에만 매 달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연과학의 경우 우리도 서구를 따라갈 수는 있지만 역전은 어렵고, 사회과학은 우리는 다른 사례나 경험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데 비해
인문과학은 우리가 가장 새롭게 앞장서 나갈 수 있는 분야”라며 세계화 시대 인문학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문화일보 / 최영창 기자 200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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