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역사전쟁` 맞설 준비 돼 있나

중국·일본의 역사 왜곡이 한국사 체계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3 년전 일본 극우 보수 세력에 의해 빚어진 ‘신편교과서 파동’ 이 전연 정리되지 않았는데 이번엔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사를 중국사로 변조시켜 놓았다. 중국은 고대사를, 일본은 근대사를 각각 날조해 한민족의 정체성과 한국사 체계를 파괴하고 한민족의 자긍심을 짓밟고 있다. 일본은 일제 침략이 한국을 발전 시켰다는 망언까지 거리낌 없이 늘어놓고 있으며, 중국은 고구려, 발해사에 이어 고려 조선 역사까지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중국 ·일본과의 역사 전쟁은 이제 피할 수 없게 됐다.

이 전쟁은 단순한 과거사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정치· 외교와 직결되고 미래의 한·중·일 관계사를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대응해야 한다. 중국은 90년대부터 준비한 동북 아시아 왜곡 사실을 교과서에 등재해 국내외에 기정사실화할 채비 를 하고 있다. 일본도 침략과 식민 통치를 미화하는 ‘중진국 발전론’등을 세계 학계에 내놓아 일부 한국 학자들까지 이에 동조하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중국·일본의 역사 전쟁 도발이 치밀하고 계획적인데 비해 한국의 대응은 냄비 물 끓듯이 단기적이며 대증요법 수준에 그치고 있다.(중국 정부의 홈페이지에서 고구려사가 삭제된 사실을 알고 나서도 우리정부는 이에 대응하려는 노력조차 안하는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한 역사전쟁에 밀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변국들의 역사 전쟁 도전에 무기력한 것은 학계의 연구 부진 책임도 크지만 결정적 이유는 세계화의 슬로건 아래 인문학 특히 국학을 소홀히 하고 역사 교육을 방치한 데 있다. 이제라도 정부와 학계는 이웃나라의 역사전쟁 도발에 대응할 다각적인 전략을 수립해야한다. 독립기념관이 지난 13일 열었던 심포지엄에서 신용하 백범학술원장은 정부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중국의 역사 전쟁 도전에 우리가 고대사 학자들만이 대응해서는 미흡하다며 학제적 연구를 촉구했다. 중국의 한국사 왜곡은 고대사학자들 만의 문제가 아니다. 김준엽 전 고대 총장 처럼 중국 학계를 잘 아는 원로 인사들과 중국의 정치적 의도에 논리적인 반박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 국제정치학자들의 지혜도 모으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국과 일본의 한국사 왜곡으로 부상한 쟁점들은 역사학계나 정신문화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에서 이미 정리했어야 할 과제들이다. 두 나라에서 나온 주장들은 사실 일제 관학자들의 식민사관이나 제국주의 침략을 미화한 식민지 발전론과 크게 다를 것 없다. 그럼에도 두 나라의 예견된 도전에 미리 대응 못하고 문제가 불거진 뒤에야 또 관련 연구소를 급조하고 임기응변식으로 방어에 급급하게 된 한심한 사태의 반복은 반성해야한다.

1977년 정신문화원의 발족 논의 과정에서 필자는 정권 차원을 뛰어넘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밝히는 국학 본산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1982년 독립기념관 건립 논의에서도 거대한 기념 건물 건립 보다 독립운동사를 사실에 근거해 재정리하고 , 설득력 있는 전시가 선행 되어야한다고 제시했었다. 정신문화 연구원이 26년간 국학 연구 본산으로 고구려·발해·고조선 연구를 꾸준히 했다면 중국의 동북공정 작업에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본 역사교과서의 왜곡에 대처하기 위해 건립된 독립기념관도 한·일 역사 전쟁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

거대 기념관 건립에 만족, 재연될 일본과 역사 전쟁 대응 전략을 세우지 않고 현상 유지에 급급하여 침체기관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내년에 일본 교과서 검인정을 둘러싸고 일본 극우 보수 세력들이 준동할 경우 우리는 중국과 일본 양측으로부터 협공을 받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관련 부처와 연구기관들이 이 역사전쟁에 대처할 전략을 구상하고 논리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중국의 집요한 공격에 정부와 학계는 다각적으로 접근해야한다. 서울 석촌동과 아차산성 등 고구려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곳에 박물관을 세워 한강변의 고구려 문화를 세계학회에 알릴 필요도 있다. 중 국·일본과의 역사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학계공조와 동아시아 공동연구 등 정부 차원의 대책과 국학 세계화를 위한 중장기 대책도 추진해야 한다.

<박석홍 / 독립기념관 감사 대전대 겸임교수>

(문화일보 2004-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