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넘은 中華주의

"한국처럼 조그만 나라가 무슨 '大한민국' 이냐, '小한민국' 이지."

중국 친구가 농담조로 한 말이다. 그렇지만 진심의 일단이 묻어 있다. 웃자고 한 말이지만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개인의 말이지만 그 속에서 중국의 일반적인 속내를 엿볼 수 있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중국 사람들은 농담이라도 이런 말을 못했다. 한국은 선진국이고 배워야 할 나라였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진 것 같다. 적잖은 중국인들이 한국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산업화가 먼저 이뤄졌기 때문에 중국보다 조금 빨리 경제 형편이 나아 졌을 뿐이라고 말한다. 많은 중국인이 서울에 가봤더니 상하이만 못하다는 소리도 한다.

지금 중국은 경제대국으로 향하고 있다. 자신감에 차 있다. 그 결과 예전에는 내지 않았던 목소리도 거침없이 나온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도 이런 각도에서 볼 수 있다. 중국의 변화가 엿보인다는 뜻이다.

물론 중국이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것은 중국 내부의 정치문제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중국의 정치적 불안요소 중 하나는 소수민족 문제다. 독립을 주장하는 티베트족과 위구르족이 대표적 예다.

조선족 문제는 아직 정치적 불안요소로 표면화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남북 한이 통일되거나 탈북자가 급증하면 문제가 달라질 수 있다.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로 끌어들이면 조선족도 역사적으로 중국인이 된다. 일제 식민지 시대 때 압제를 피해 할 수 없어 넘어간 한국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중국 사람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 경우 정치적 불안요소가 일정 부분 제거될 수 있다. 중국이 다민족 통일국가라는 이론으로 고구려 역사를 중국에 편입시키려는 가장 큰 이유다.

한국 입장에서 중국의 이런 역사 왜곡은 반드시 시정하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멀쩡한 우리 역사를 강탈당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역사 바로잡기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또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이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목적에 맞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징조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역사의 왜곡' 이라는 형식을 통해 자국 이익을 강변하는 측면이 강한 것 같다. 일종의 '대국주의(大國主義)' 이고 '중화주의( 中華主義)' 다.

그 동안 중국에 대해 간과해온 부분이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과거에는 몰라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대외적으로 노골적으로 패권주의를 드러낸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적어도 패권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일관되게 대국주의를 추구해온 나라다. 지금까지는 대외적으로 그런 목소리를 낼 입장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대내적으로는 다르다.

중국은 티베트를 합병했다. 그리고 1989년 티베트 민중의 독립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적도 있다. 당시 티베트 즉 시창(西藏) 자치구 주석이 현재의 후진타오 (胡錦濤) 국가 주석이다.

한국에서는 최근 반미 감정이 확산되면서 중국을 심정적으로 가깝게 느끼는 사람이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중국 역시 강대국 중 하나일 뿐이다.

굳이 티베트와 위구르의 사례를 든 것은 중국도 자국 이익에 배치되면 무력까지 동원하는 나라일 뿐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지금 중국은 대외적으로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어떤 면에서 이미 대국주의를 보이고 있다.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한국과 중국간의 마늘분쟁이 그 예다. 사실 무역분쟁이 벌어졌을 때 그리고 분쟁이 대화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보복조치는 당연히 할 수 있다. 마늘분쟁은 그러나 중국의 강압이 상당히 작용한 부분이 없지 않다.

한국뿐만 아니다. 중국은 2001년 일본의 농산물 수입금지 조치에 대해서도 강력한 보복조치를 취하면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예전과 달리 분쟁이 발생했을 때 중국이 고압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민족감정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열린 아시아컵 대회에서 일본에 보인 감정 표출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자신감이 민족감정이란 형태로 나타난 것 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움직임에 우려의 눈길부터 보내는 것은 기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보면서 한국은 바로 옆에 있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 역시 강대국 중 하나일 뿐이다.

(매일경제 / 윤덕노 사회부장 2004-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