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역사학계의 ‘곡학아세’

최근 중국 역사학계는 전무후무하게 신축성이 뛰어난 독창적인 이론을 대량으로 출하해내느라 바쁘다. 이 천재적인 이론들은 주로 한국 고대사와 관련한 분야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건, ‘민족’이라는 개념이다. 한때 중국 인민의 친근한 벗이었던 스탈린은 민족을 구별하는 지표로 ‘언어’와 ‘핏줄’을 꼽았다. ‘동북공정’에 참여하고 있는 중국의 극우 역사학자들은 옛 동지 스탈린의 이론을 팽개치고 대신 옛문헌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렸으면 모두 다른 민족으로 간주하는 극도의 엄밀함을 과시하고 있다. 그 결과 부여, 고구려, 예맥, 신라, 백제 등 이미 오래 전부터 같은 혈통으로 간주돼온 한국 고대의 주인공들을 모두 서로 무관한 겨레로 찢어지게 됐다.

이런 ‘엄밀함’을 중국사에 적용시키면 중국사는 속된 말로 ‘콩가루’처럼 변한다. 5호16국 같은 분열기는 물론 하·상·주가 모두 다른 겨레의 역사일 뿐 아니라, 원·청 시기는 한족사의 공백기라고 해야 한다. 이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은 최근 ‘중화민족’이라는 민족 이름을 새로 만들어냈다. 여기에는 한족 뿐 아니라 혈통과 언어가 다른 중국 안 55개 소수민족이 다 포함된다. 한국에선 같은 계통의 언어·핏줄·풍습을 지닌 겨레붙이조차 다른 ‘민족’으로 찢어놓고, 중국에선 핏줄과 언어가 전혀 다른 55개 소수민족조차 ‘중화민족’에 포함시키는 대범함을 과시하는 게 중국의 현대 학문이다.

또 다른 놀라운 역사 이론은 역사 계승관계에 ‘시효’를 따지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고려가 비록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주장하지만, “고구려가 망한 뒤 200년이나 지나 건국됐으므로 계승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그런 논리다. 이 ‘역사 계승 시효 이론’을 중국사에 적용시키면 중국사는 또 한번 지리멸렬하게 사분오열한다. 가령 “멸청흥한”을 외친 쑨원을 공동의 국부로 삼고 있는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명나라 한족에 역사의 줄기를 대고 있지만, 300년 전에 망한 나라와 ‘계승관계’를 논하는 건 ‘시효’가 지난 일이다. 중국사는 결국 몇 조각의 옛날 이야기 모음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 난점을 해결하기 위한 게 “먹어도 우리 땅, 먹혀도 우리 땅” 이론이다. 다시 말해 티베트 같은 지역은 원나라가 정복한 지역이므로 ‘우리 땅’이고, 원·청의 경우는 한족이 ‘먹혔으므로’ 또한 중국사라는 조금 복잡한 이론이다. 중국문화에 대해 관심있는 독자라면 이 이론이 루쉰이 쓴 〈아큐정전〉의 주인공 ‘아큐’의 이른바 ‘정신승리법’과 완전히 똑같은 위대한 정신에서 나온 것임을 쉽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아큐는 깡패에게 한 대 두드려 맞은 뒤 이렇게 자위한다. “내가 저들에게 맞아주었으므로 사실은 내가 이긴 거다.” 더 끔찍한 일은 황제에게 올린 사관의 글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 도도한 곡학아세의 대하소설 앞에서 이를 비판하는 중국 지식인이 한 사람도 없다는 데 있다. 자신의 허물과 추함을 질타하는 지식인이 없는 겨레는 희망이 없다. 나는 진정으로 이웃 중국이 좀더 살만한 곳으로 변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큐의 정신승리법을 통해 중국의 추한 얼굴을 질타했던 루쉰의 목소리가 그립다.

(한겨레신문 / 이상수 베이징특파원 2004-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