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만해를 생각하며

올해로 만해 한용운 선생이 서거한지 60년이 되었다. 강원도 인제 땅 만해마을에서는 만해축전 6주년 행사가 열렸다. 필자는 만해를 다시 생각하며 오늘 우리의 어려운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까를 고민하면서 이렇게 인사말을 했다.

시인이자 불교인, 그리고 사상가이자 혁명가

일찍이 만해 선생님은 시인이자 불교인으로서 내면의 가치에 충실하고자 했습니다. 대립과 투쟁, 갈등을 넘어서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했습니다. 동시에 사상가이자 혁명가 이셨습니다. 내면과 외면이 완벽한 조화를 통해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새로운 삶을 창조한 분입니다. 나룻배와 행인이라는 시에서 선생님은 이처럼 조화로운 삶을 탁월한 비유로 표현했습니다.

나는 나룻배 / 당신은 행인(行人). /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 당신은 행인.

이 시에서처럼 선생님은 현실의 억압을 외면하거나 피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온몸으로 끌어안았습니다. 또 “날마다 날마다 낡아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차이와 대립을 강조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통일을 중시했습니다. 신간회 활동 등이 그것입니다. 한차원 높은 통일장의 사고를 지녔기에 선생님은 우리 민족이 부딪친 문제를 누구보다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갈등의 해결을 위해 평생을 바친 선생님의 삶에서 오늘 우리는 우리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단초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삶은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의 길이었습니다. 외세를 반대하는 자주의 길이었습니다. 우리 민족 내부의 차이를 넘어서 통일을 추구하는 길이었습니다. 바로 남과 북, 동과 서, 노와 사, 빈과 부의 차이를 넘어 민족을 하나로 통일하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바로 선생님이 평생 추구한 길이었습니다.

지금 세계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채 낡은 사고에 억매여 있으면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대립과 투쟁과 갈등을 중심으로만 사물을 바라보는 사고가 문제입니다. 이제는 통일을 중심으로 참여와 미래를 강조해야만 합니다. 그럴 때만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어떻게 라는 방법론도 나올 수 있습니다.

만해 선생님은 고대<苦待>라는 시에서 “당신은 나로 하여금 날마다 날마다 당신을 기다리게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기다림의 갈망이 깊고 모두가 합심하면 ‘어떻게’라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날카로운 원망’도 머지 않아 희망찬 현실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통일단결의 힘은 우리 헌법정신에서 나와

우리는 만해의 정신과 삶을 반추하면서 이러한 원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부시의 이라크 침공과 같은 미국의 패권주의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같은 일본의 국수주의, 그리고 고구려 발해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의 대국주의가 발호하고 있다. 만해의 평화 자주 통일의 정신은 이라크 파병을 철회하고 6.15 정신을 계승하여 자주통일의 방향을 명확하게 할 때 계승된다. 나아가 우리가 단결과 통합을 통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춰 이들보다 비교우위를 점해야 만해의 정신이 부활하는 것이다.

내부가 갈등 대립할수록 외부적 어려움을 극복하기는 더 힘들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이 갈등 대립하면 더욱 그렇다. 통일 단결의 힘은 정파들의 외침이나 선동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헌법정신 속에서 나온다. 바로 우리 사회가 헌법 전문에 명시된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 받을 때 통일 단결의 흐름이 만들어진다. 그럴 때만이 21세기 선진사회로 도약된다.

(내일신문 / 장명국 발행인 2004-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