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 왜곡> 후진타오체제와 중화민족주의

`고구려사 왜곡'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불거진 `후진타오(胡錦濤) 역할론'이 새로운 불씨를 지피고 있다.

발단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헤이허(黑河)일보가 최근 `동북공정(東北工程) 은 후진타오 동지가 2000년 중국 사회과학원을 통해 비준한 사회과학 연구항목'이라고 소개한데서 비롯됐다.

또 중국 국무원 산하의 랴오닝(遼寧)성 문사연구관은 홈페이지에서 후진타오를 비롯한 중국 공산당 주요지도자들이 쑨진지(孫進己) 연구관의 고구려 관련 연구를 지지했다고 전하고 있다. 쑨진지는 동북공정과 관련해 고구려사를 중국의 역사로 ` 구성'하는데 앞장선 대표적 학자다.

여기에 1998년 주최한 고구려 학술토론회 당시 후진타오 당시 국가부주석 등 공산당 영도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전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후진타오 체제가 조직적으로 일부 학자들을 동원해 동북공정을 주도하고 있다는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시점에서 후진타오 체제의 `지향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이끄는 현재의 지도부는 `혁명 제4세대'로 통칭된다. 여기서 말하는 혁명은 물론 사회주의 공산혁명을 말한다. 세대별로 주어진 시대적 과제가 다르듯 4세대에게는 과거 세대와 다른 목표가 있음을 의미한다.

마오쩌둥(毛澤東)을 정점으로 한 혁명 창업(創業)세대가 신생 사회주의 중국을 수호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제2세대인 덩샤오핑(鄧小平) 그룹과 3세대 장쩌민(江澤 民) 그룹이 중국의 근본을 다지고 발전의 발판을 구축하는 수성(守成)의 역할을 했 다고 할 수 있다. 이제 4세대는 본격적인 중국의 미래를 열어나가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는 것.

그러면 4세대의 지향점은 무엇으로 정리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이 대목에서 `중화(中華) 민족주의'를 거론한다. 또 현재 중국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중화민족주의가 발현할 충분한 근거가 있다는 점도 함께 지적한다.

우선 10여년이 넘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구가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중국이지만 내부의 문제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는 관측이 많다. 특히 사회주의 1당 체제와 새로운 시장경제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서 불거지는 문제는 중국의 통합성을 해치는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단적인 예로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상징되는 민주화 요구는 경제수준이 높아지면 당연히 부상하는 `필연적 요구'에 해당된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1당체제를 고수하는 중국 지도부로서는 이를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내부의 문제를 희석화하는 수단으로 `외부의 적'이 등장해야할 필요성이 있게됐고, 바로 이런 점에서 `중화 민족주의'가 공고해지고 있다는 분석을 하는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체제 수호를 위해 민주주의를 주장한 세력들을 억압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로인한 심리적 부담감은 털어내기 힘든 짐이 되고 있다. 여기에 경제발전과 대외 개방으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퇴색하는 최근 상황에서 새로운 체제이념을 창출할 필요성은 배가되고 있다.

후진타오 주석은 지난 1989년 티베트에서 일어난 현지 주민들의 `분리요구' 항거를 유혈진압(당시 시장자치구 당서기)한 경력이 있다는 점에서 내부의 문제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이념의 퇴색속에 지역과 계층간 소득격차 등 사회적 분열요소가 확산되는 시점에 맞춰 새로운 통합개념으로 `중화 민족주의'를 제창하고 있다는 분석은 설득력을 얻는다. 한족(漢族)뿐 아니라 55개 소수민족을 포괄하는 중화민족 의 부상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있다.

후진타오 체제의 중화 민족주의는 역사적 측면에서 볼때 시간적으로는 고대국가인 하(夏) 상(商) 주(周)시대를 연구하는 단대공정(斷代工程)으로 표출됐고, 공간적으로 볼때는 동북공정으로 표출됐다고 할 수있다. 동북공정이라는 공간속에 55개 소수민족을 모두 담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중화 민족주의의 제창은 현재적 상황에서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세계 여자배구선수권대회에서 중국 여자배구팀이 11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하자 전 중국민이 환호하기도 했으며, 유인우주선 발사에 성공한 뒤 `위대한 중국'이라는 얘기가 거리에 회자되는 것은 간단히 발견할 수 있는 사례다.

아시안컵 축구경기장에서 보인 관중들의 국수주의적 응원태도는 물론이고, 과거 일본에 대한 과거사 추궁에서 과거보다 더욱 강경하고 감정적인 중국인들의 모습에서 애국심과 민족주의가 투입된 단면들이 엿보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중국의 위대함과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선동적인 글'들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인터넷 애국주의'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다.

중국의 민족주의 고양, 중화 민족주의의 팽창은 필연적으로 주변국과의 갈등적 요소를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새로운 중국의 국가적 지향에 대응하는 지혜로운 대책마련이 시급한 과제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연합뉴스 / 이우탁 상하이특파원 2004-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