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수교 12주년> ③중국환상 깨운 '역사왜곡'

고구려에 대해 아는 중국인은 그리 많지 않다.

아는 사람들도 그저 만주와 조선반도(한반도)에 걸쳐 있던 중국의 변방국가 정도로 기억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에 반해 한국인들을 어떤가. 웅혼한 기상을 가진 우리 민족의 한 뿌리로 인식하고 있고 고구려를 세운 주몽(朱蒙)을 우리 시조 가운데 한 인물로 추앙한다.

그 뿐인가.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업적을 기억하며 을지문덕, 연개소문, 양만춘과 같은 장군들의 이름은 초등학생만 되면 줄줄이 꿴다.

이처럼 한국이 민족사의 큰 축으로 인식하고 있는 고구려사를 국민이 제대로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중국에서는 왜 자기 나라 역사에 편입시키려 하는 걸까.

한반도 통일 후 일어날지 모르는 간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의 사전 차단, 재중 동포들이 거주하는 동북 3성(省) 지역의 영토권 재확인, 정치적 혼돈 속에서의 북한 통합 기도 등 다양한 의도를 고려에 넣을 수 있다. 영토확장을 통한 패권주의의 부 활을 경계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국 정부는 그러나 지방정부과 일부 학자들을 앞세워 시작한 이른바 '동북공정 (東北工程)'이 점차 고구려사 왜곡으로 발전하면서 한국 언론과 국민이 들끓고 정부가 강력히 항의하는 등 외교분쟁으로 비화하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방정부와 국립 대학의 고구려사 왜곡에 이어 이번에는 중앙정부가 직접 나서 외교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고구려사를 자국의 변방사로 묘사하는 등 단계를 밟아가며 한국 고대사의 일부를 침탈하려다 한국의 거센 반발에 부닥쳤다

1992년 수교 이후 전면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하며 확대일로를 치달았던 양국 간 교류에 12년 만에 큰 걸림돌이 등장한 셈이다.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정책의 방향을 정하는 우리와 달리 적절한 권력 견제 장치가 없는 중국에서는 곧잘 정책 오류가 발생하곤 하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수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중국 정부는 이번에도 별다른 사과나 해명 없이 홈페이지에서 한국의 정부수립 이전 역사를 모두 삭제하는 진실 회피성 미봉책으로 슬그머니 덮어버리려 했지만 이것으로 한.중 간 외교마찰을 피할 수는 없게 됐다.

한국 외교부 박준우 아태국장은 중국측의 이런 행태를 항의하고 잘못된 역사인 식을 바로잡을 것을 요구하기 위해 최근 중국을 방문했다. 박 아태국장을 통해 확인한 중국 당국의 해명에서 고구려사가 양국 사이에 쉽사리 제거하기 힘든 걸림돌로 장기간 자리잡게 될 것임이 자명해졌다.

지방정부나 대학에서 벌어지는 일을 중앙정부가 일일이 통제하기는 힘들다거나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한국의 근대 이전 역사를 모두 삭제한 것을 놓고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는 해명은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것들이다.

한국 고대사를 제대로 수정하지 않고 아예 삭제한 것과 관련, 중국 내에도 고구려를 중국의 일부로 보는 시각과 이에 비판적인 입장이 공존하기 때문에 이들 간 형평을 고려해 내린 조치라는 설명이다.

우리의 기대처럼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순리'가 통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일부에서는 동북공정이 시작된 2002년보다 2년 앞서 중국 정부가 전국의 출판사 에 공문을 보내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기술하도록 지시했다는 설도 있다. 중국의 역사왜곡이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진행돼 온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차제에 맹목적인 중국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좀더 냉철한 태도로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도 역사적 사실을 더욱 정확하게 정리하고 북한과의 학문 교류를 통해 중국의 논리에 적절히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일각의 판단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고구려사를 두고 중국 내부에서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는 식의 궤변에 맞서려면 국제 역사학계로부터 인정받는 고대 역사서를 치밀하게 분석해 그들의 주장이 사실과 전혀 다른 엉터리라는 점을 부각시켜 국제사회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는 얘기다.

수교 12주년을 맞아 새롭게 다가선 중국. 엄청난 크기로 우리를 압도하는 대륙 과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온 것이다.

(연합뉴스 / 박기성 베이징특파원 2004-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