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동북공정’ 연구기관 지원

정부 산하기관이 ‘동북공정’에 참여한 한 중국 역사 연구기관에 자금을 지원했으며, 이 기관은 이 자금으로 고구려사 등 한국 역사를 왜곡·비하하는 내용의 책을 출간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통상부 산하 한국국제교류재단은 1996년 7월 중국 지린(길림)성 사회과학원이 <중조관계통사>를 펴내는 데 8만위안(1200만원)을 지원했다. 이 기관은 95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한국 고대사 왜곡 작업인 ‘동북공정’에 참여하고 있는 곳이다.

이 책 <중조관계통사>에 실린 내용을 보면 제4장 ‘수당시기의 중조관계’ 92쪽에서는 “수 양제가 전 중국을 통일해 고대의 강력함을 되찾고, 조선반도 국가인 신라와 백제를 지원하기 위해 고구려를 ‘징벌’했다”고 적어 고구려를 조선민족의 독립국가가 아닌 중국의 일부, 또는 지방정부로 기술하고 있다.

당 태종의 고구려 침공에 대해서는 “요동은 원래 중국 땅이며 고대 중국의 군현인데, 수 양제가 네 번이나 출병했지만 회복하지 못해 그 원수를 갚기 위한 것이었다”고 표현했다.

또 77∼78쪽에서도 “고구려는 고대중국 다민족국가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라며, 모본왕 2년(기원전 50년)에 고구려가 한나라를 습격해 4개 지역을 점령한 것을 두고는, “고구려의 역량으로는 절대로 4개 지역에 도달할 수 없으며, 아마 고구려가 속국이었던 선비에 지시해 한 일로 의심된다”고 비하하고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역사까지도 비하하고 있다. 431쪽에서는 1712년 청나라 우라총관 목극등(무커덩)이 조선의 대표 박권과 함께 정계비를 세운 것을 두고 “밤도둑과 같고 비열한 깡패행위이며, 헛수고하는 어리석은 행위”라고 비난했다. 문화유산연대회의(가칭, 준비위원장 강찬석)는 13일 “이 책은 한반도 역대 국가를 조롱·비하하는 표현이 수두룩한 동북공정의 초기 출판물로 보인다”며 “한국은 자신의 역사를 왜곡하려는 외국의 연구기관에 자금을 지원한 우스운 나라가 됐다”고 비판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 관계자는 “당시에는 이 기관이 동북공정의 연구기관인지 몰랐으며, 지원 뒤 책에 이런 내용이 포함된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94년 지린성 사회과학원 한국독립운동연구중심의 지원 신청을 받아 <중·한관계 통사> <조선 삼일운동사> <1910∼1945년 중국내 한국반일독립운동사> <한국현대명인전> 등 모두 4권의 출판을 지원했다.

(한겨레신문 / 윤진 기자 2004-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