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는 고구려 계승 증거

우리는 지난날에 일어났던 일을 주로 기록을 통해서 안다. 특히 역사책은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문자가 생겨난 다음부터 현재까지 많은 나라들이 역사책을 남기고 있다. 삼국시대에도 역사책을 펴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고구려는 600년 영양왕 때, 오늘날의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태학의 박사였던 이문진이 〈유기〉 100권을 정리해서 〈신집〉 5권을 만들었다고 한다. 〈유기〉는 고구려의 신화나 설화, 전기나 왕실의 계보 등 갖가지 일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신집〉은 이를 자료로 하여 고구려의 역사를 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백제는 4세기 중엽 근초고왕 때, 박사 고흥이 〈서기〉를 썼다. 이밖에 〈백제기〉, 〈백제신찬〉, 〈백제본기〉 등의 역사책 이름이 일본 역사책에 전해진다. 한편 신라에서는 545년 진흥왕 때, 높은 관직에 있던 거칠부에게 명해 〈국사〉를 펴냈다고 한다. 임금과 신하가 한 일의 옳고 그름을 후세에 길이 전해 교훈으로 삼고자 한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들 역사책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삼국의 역사를 기록한 우리나라 역사책으로 전해지는 것은,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지 약 500년, 신라가 문을 닫은 지 200년이 지난 1145년 고려 인종 때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가 가장 오래됐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펴내면서 왕에게 올리는 글에서, 당시의 학자들이 중국의 〈사서삼경〉이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우리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을 개탄하면서, 삼국의 역사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고 말하고 있다.

삼국시대 당시 펴낸 역사책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삼국의 역사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중요한 원인이다. 특히 요즈음 중국이 고구려를 자기 나라 역사에 편입시키려고 해서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신라계 경주 김씨인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를 ‘삼국사’란 이름으로 묶어서 서술하고 있는 것은, 다른 나라나 민족과는 구분되는 하나의 단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부식이 우리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며 삼국의 역사를 서술한 것은, 적어도 당시 고려사회에서 삼국을 물려받은 것이 고려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음을 말해 준다. 이는 고구려가 고려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 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문득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유기〉나 〈신집〉, 신라와 백제에서 만들어진 역사책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면, 고구려 역사를 둘러싼 논란 자체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교원대 교수>

(한겨레신문 2004-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