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특집 좌담] ″근세까지 날조…한국사 해체 노린다″

일시:8월11일 오후 2시

장소:국민일보 편집국 회의실

참석자:권중달 중앙대 사학과 교수

박병석 서울사이버대 중국통상학과 교수

김현숙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사회:문화부 정철훈 차장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시도는 이제 중국이 더이상 종이호랑이가 아니라 살아 있는 호랑이로 포효하고 있음을 알리는 중화패권주의의 전주곡에 다름아니다. 여기엔 중국의 패권을 위해서라면 주변국이 화(禍)를 입어도 상관 없다는 야만적 힘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광복 59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시도 배경은 무엇이며, 우리 정부의 정치외교적 대응 미숙은 어디에 기인하는지 전문가들의 좌담을 통해 그 종합적인 처방을 알아본다. <편집자>

△ 사회 = 중국의 역사 왜곡이 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를 중국 고대 지방정권의 하나라고 주장하고 나선 게 발단이었지요. 중국측 주장의 배경과 타당성부터 짚어볼까요.

△ 박병섭 = 최근 중국 선전을 다녀왔습니다. 관광객들에게 2개의 공연을 보여줬는데 중국은 한족을 중심으로 한 다민족 국가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더군요. 특히 55개 소수민족 중 세 번째로 한복을 입은 배우들이 10여명 나와 공연하는 모습을 보면서 최근 고구려사 문제가 오버랩되어 더이상 보지 못하고 퇴장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중화민족이란 입장에서 과거의 역사를 자의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죠.

△ 김현숙 = 중국은 현재의 필요에 의해 사실로 존재했던 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고구려라는 독립된 국가의 존재를 잘 보여주는 것이 광개토대왕비입니다. 비문을 보면 고구려의 직접 지배를 받는 고구려민 외에 신라 백제 숙신을 모두 간접 지배를 받는 속민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왜와 거란은 제외돼 있습니다. 다시 말해 왜와 거란을 외부의 적으로 본 것이죠. 주목할 점은 중국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는 것입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는 당시 후연과 전쟁을 많이 벌인 것으로 나오는데 후연에 대한 언급도 없습니다. 고구려는 중국과 다른 독자적인 천하관을 세웠다는 증거입니다.

△ 박 = 중국 사관의 하나인 정통론을 보면 전통 중국을 전부 또는 일부 지배한 북방 정권 가운데 북위 북제 북주 요 금 원 청 등은 중국사의 일부로 인정되어 정사에 편입돼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의 일부인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및 발해는 열전에서 다루고 있지요. 이는 결국 전통적으로 그들은 우리의 역사를 분리시켜 왔던 것입니다. 중국의 역사 왜곡은 학술성을 벗어나 정치적 목적과 의도가 개입돼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 권중달 = 중국 사람들이 스스로 올바른 역사라고 인정한 게 정사입니다. 고구려와 관련해서는 당조가 제일 중요한데 신당서와 구당서 2개의 정사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왜(일본)를 동이족이 세운 나라로 규정하고 자기네 역사가 아니라고 분류했습니다. 논리적으로는 이미 끝난 이야기지요.

△ 박 = 중국은 과거 중국인, 특히 한족의 신화적 원류를 황제에서 찾아 황제 신화를 믿어왔지만 80년대 개혁개방 이후에는 염제와 황제를 모두 중화 원류로 각색했지요. 염제 신농씨는 일반적으로 복희나 치우와 함께 동이족으로 알려져 있지요. 이는 동이족 계통의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중국사로 편입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중국 사회학의 태두인 비효통은 1988년 중국이 한족을 중심으로 55개 소수민족이 모여 중화민족을 형성했다는 다원일체 개념을 내놓았습니다. 80년대에 이미 대항논리를 충분히 만들어 놓은 셈이죠.

△ 사회 = 중국의 역사 비틀기를 주변국에 대한 중화론(中華論)적 침략주의로 보는 시각도 있던데요.

△ 권 = 그것은 한족 중심이던 중화민족의 개념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데 기인합니다. 혈통이 아니라 문화를 민족 개념의 중심에 놓은 것이죠. 이는 결국 중국 문화를 받아들인 민족은 모두 중화민족이라는 식의 발상이고, 사실상 문화적 침략주의와 같은 것입니다. 이런 사고를 버리지 않으면 중국은 세계와 함께 살아갈 수 없습니다.

△ 박 = 중국은 현재 대내외적으로 분열과 통합의 두 동력을 안고 있습니다. 최근 중화권 조야에서 대중화경제권, 화인경제권 등을 주장하며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화교들을 통합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요. 동시에 내부의 분열 움직임에 대해서는 강력한 폭력을 행사합니다. 또한 내부적으로 문화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것도 시민사회가 형성돼 분열 요인이 생기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 사회 = 중국측 의도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 김 = 각자가 자기 역할을 다하는 게 중요하지요. 학자들은 고구려를 연구해 학문적 대응논리를 만들고, 시민들은 고구려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미리미리 예측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은 대응이 한발씩 늦는 데다 처방도 즉자적입니다.

△ 박 =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에 대한 이해나 시각이 매우 취약합니다. 좌우를 막론하고 친중 일변도로 기운 사람이 많지요. 많은 학자들이 중국 정부 또는 중국 학자가 각색한 시각과 연구 방법을 그대로 베낀다는 것이 더 문제지요.

△ 권 = 중국은 학문마저도 정치적 필요에 의해 좌우하는 국가지요. 따라서 학문적으로 비판해봐야 받아들일 태세가 돼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저쪽은 정치적 의도를 갖고 나오는데 우리는 학문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은 너무 순진한 일이죠.

△ 사회 = 우리측에서 학술토론을 하자고 해도 중국측의 반응이 없는 게 현실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응책이 있을까요.

△ 박 = 장기적으로 중국사를 해체할 필요가 있어요. 중국사의 실상을 가르쳐야겠지요. 예를 들어 유교에는 덕이 있는 사람이면 이민족일지라도 중국을 지배할 수 있다는 논리가 있습니다. 만주족이 중국을 지배할 때 한족들이 반발하니까 유교 문화에서 이를 찾아낸 것이지요. 사실 중국사는 민족의 역사가 아니라 땅의 역사지요. 1911년 중화민국 수립 이전에는 국명으로서의 중국이나 국사로서의 중국사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 권 = 현실적으로 중국을 설득할 필요도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는 블록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에서도 정치 경제 국방 등에서 협력이 절실한 상태입니다. 중국도 세계의 일원으로 들어오려면 화해·협력의 방향으로 역사를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 김 = 우리가 공통의 목적을 추구하자, 서로 이해하자고 이야기해도 중국은 제 갈길만 간다는 게 문제지요.

△ 권 = 주변국과 연합해 목소리를 내면 중국도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네 역사,내 역사’는 촌스러운 역사개념 아닙니까. 혈통의 역사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18,19세기식 논리일 뿐이지요. 학자들 사이에서 중국사를 동북아사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더군요.

△ 김 = 민족을 넘어 동아시아사로 접근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민족을 내세우지 말고 다 함께 가자’, 이게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중국은 철갑기병으로 나오는데 우리만 다 벗자는 이야기가 될 수 있지요. 고구려는 한국사 계승의 중요한 고리입니다. 고구려가 무너지면 고조선 발해 부여 다 위험해집니다.

△ 권 = 국사를 강화해야겠지만 국수주의로 가는 데는 반대합니다. 분쟁의 원인을 제공할 공산이 큽니다.

△ 박 = 요즘처럼 한·중·일 3국이 경쟁·대립하는 상황이라면 과연 동북아문화공동체가 실현가능할지 의문입니다.

△ 김 = 지난달에 중국 ‘변강사지중심’에서 2004년 후반기 연구과제 공모 결과를 발표했는데 고구려 관련 주제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대신 발해 고려를 거쳐 조선의 북진정책과 간도 문제 등 최근세사까지 포괄하고 있더군요. 중국이 벌써 고구려사를 넘어섰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 권 = 국력 문제인 것 같습니다. 국가적 안목이 있어야 멀리 내다보고 생각할 수 있지요. 우리는 아직 통일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고민도 하지 않고 있지요.

△ 사회 = 고구려 문제의 경우 북한과의 공동 대응이 절실한데요. 현실성이 있을까요.

△ 김 = 북한은 고구려를 지켜야 할 이유가 우리보다 더 많은데도 아직 반응이 없습니다. 고구려연구재단에서도 북한을 방문하는 등 노력해왔지만 조문파동 이후 경색된 상태입니다. 북한 외에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미국 유럽 등 세계 각국에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중국이 역사의 ABC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 박 = 정부 차원에서도 중국에 대한 연구를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재주를 숨기고 때를 기다린다’는 뜻의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외교의 원칙으로 세웠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보면 중국이 바로 그 때를 찾은 듯합니다. 최근 들어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룬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외 문제에 적극 대처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지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인도쪽의 국경 문제는 거의 해결했고 이제 일본과 분쟁을 빚고 있는 센가쿠 열도와 한반도 문제를 정리하는 수순만 남아 있을 뿐이죠.

△ 김 = 정부도 너무 서두릅니다. 일이 생기면 대응논리를 내놓으라고 재촉부터 하지요. 학문은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내듯 하루아침에 성과가 나오는 게 아닙니다.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권 = 역사 문제는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심층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먼 장래를 내다보면서 준비하는 성숙한 안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일보 2004-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