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성 주변‘고구려 보루城’ 발굴

국내 4번째… 고구려 연꽃기와는 첫 출토
“5~6세기 한강 지배한 軍勢 가늠할 유적”

서기 475년 장수왕의 남진(南進) 정책으로 한강유역을 장악했던 고구려가 한강지역 방어를 위해 서기 5세기 말~6세기 초반에 쌓았던 보루(堡壘·키워드 참조)의 하나인 서울시 광진구 광장동 홍련봉 1보루의 전모가 1500여년 만에 드러났다.

내부 면적과 저수 시설 등을 종합할 때 50여명의 군사가 주둔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곳에서는 당시 궁궐 등에서나 사용했던 연꽃무늬를 새긴 고구려 기와가 남한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토돼 최상급 지휘관이 주둔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 의뢰로 발굴 중인 고려대 매장문화재연구소 최종택(崔鍾澤) 교수(고구려고고학)는 12일 “홍련봉 1보루에서 성벽과 건물터, 연꽃무늬나 ‘夫’(부)와 ‘父’(부)자 등을 새긴 고구려 기와 등이 출토됐다”고 밝혔다.

전체 길이 130m, 내부 면적 400여평 규모의 홍련봉 1보루는 30~50㎝ 크기의 다듬은 돌을 4m 높이로 쌓은 성으로, 현재 성곽 높이는 2.5m 정도만 남아 있다. 성 내부에서는 온돌을 갖춘 건물터 7개와 물이 새지 않도록 바닥에 진흙을 다져 만든 저수 시설(가로 세로 각 5m), 치(雉·방어를 위해 성벽 바깥쪽으로 돌출시킨 구조물) 등이 발굴됐다.

고고학계는 “남한에는 고구려 유적이 많지 않기 때문에 고구려 유적 발굴은 지금까지 10여 차례에 불과한 정도”라며 “서기 5~6세기 한강을 장악했던 고구려의 실체와 고구려의 군사 편제 등을 가늠할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유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서울 광진구 광장동 아차산성 주변에는 서기 475년 장수왕의 군대가 백제 개로왕을 참수한 이후 한강을 수비하기 위해 쌓은 고구려의 보루가 현재 16개 정도 남아 있다. 이중 홍련봉 1보루까지 모두 4개의 보루가 발굴됐는데, 홍련봉 1보루는 조사 결과 신라와 백제의 연합군에게 서기 551년 한강유역을 빼앗길 때 고구려군이 철수하면서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숟가락이나 무기의 숫자, 내부 규모 등으로 볼 때 10여명이 주둔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구의동 보루는 지난 1977년 발굴 때 아궁이에 솥이 걸린 상태에서 건물은 물론 무기와 숟가락 등 주방용구까지 모두 불에 탄 상태로 발굴돼 나제(羅濟)동맹군의 기습으로 몰살됐음이 밝혀졌다.

고구려 보루란?

산봉우리에 줄지은 ‘방어진지’

둘레 300m 이하의, 산성보다 조그만 규모의 성을 말한다. 산의 돌출된 여러 봉우리에 쌓은 뒤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시켜 일종의 장성(長城) 역할을 한다. 적은 군사로 넓은 지역을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고구려의 특징적인 방어시설이다.

산의 경사진 면을 ‘ㄴ’자로 깎아낸 뒤 바닥을 다지고 돌을 쌓아 만들었다. 아차산 자락의 16개 고구려 보루는 대개 400여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만약 한 보루가 공격당하면 다른 보루들에서 적을 협공하는 식으로 운영됐다. 아차산의 16개 고구려 보루는 사적 지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동아일보 / 신형준 기자 2004-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