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의 타락

중국공산당.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 뒤에도 드팀없이 집권하고 있는 공산당이다. 1921년 상하이에서 창당해 49년 중화인민 공화국을 건설하기까지 항일전쟁과 혁명의 가시밭길을 걸었다. 집권 뒤에도 이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며 마오쩌둥·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로 지도부를 ‘개혁’해 왔다. 상대적으로 ‘젊은 주석’ 후진타오의 연설은 깔끔한 외모만큼이나 신선했다. ‘미래의 새로운 장’을 열겠다며 ‘화평굴기’를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전혀 ‘평화로 우뚝 서자’가 아니다. 패권주의가 살천스레 고개를 쳐든다. 고구려 역사가 언죽번죽 중국사란다. 참으로 말살에 쇠살이다. 중국공산당의 저 탁류에 맞서 12세기 <삼국사기>를 거론해야 하는가. 아니면 ‘코리아’라는 국호가 고려와 고구려에서 비롯된 것임을 상기시켜야 하는가.

그렇다. 문제는 중국공산당이다. 중국 언론의 ‘성역’인 후진타오 공산당 총서기에게 오늘 분명히 묻는다. 공산당이라는 이름이 쑥스럽지 않은가.

중국공산당은 오늘 타락할 대로 타락했다. 지금 다시 노선을 재정립하지 않으면 그 후과는 벅벅이 중국 인민에게 돌아갈 터이다. 다행히 ‘젊은 주석’은 총명과 겸손을 두루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더러는 ‘동북공정’이 후진타오의 의도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아니 오히려 그래서다. 오늘 중국의 모습을 똑똑히 살피기 바란다. 후진타오 정권은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과 과연 얼마나 다른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는 고이즈미를 비판하면서 닮아가려는가. 중국공산당은 일찍이 “창문을 열면 파리도 들어올 수 있다”며 개방으로 인한 ‘오염’을 가볍게 여겼다. 하지만 96년 9월 베이징의 중화전국신문공작자협회 대강당에서 열린 한-중 기자세미나에서 한국 쪽 발제를 통해 밝혔듯이, 중국공산당의 ‘생산력주의’에는 큰 ‘구멍’이 있다. 중국공산당 선전국장이 참석한 그 자리에서 나는 ‘들어온 파리’가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음식물 곳곳에 병균을 옮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00년 다시 중국에 갔을 때다. 젊은 공산당원과 이야기를 나누며 우려는 더 커졌다. 그는 당원이 되는 ‘영광’을 말하면서 그것이 출세를 위한 길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심지어 입당절차의 하나인 ‘사상 시험’은 ‘떠도는 공식집’을 “달달 외워 본다”고 말했다. 물론, 모두는 아닐 터이다. 하지만 사과 하나가 썩으면, 사과궤짝 안이 모두 썩는 것은 시간문제다. 아무 부끄럼 없이 ‘부국강병’을 들먹이는 오늘의 공산당을 보라.

중국 인민이 마오저뚱의 과오를 알지만 여전히 존경하는 까닭은 나라를 반석에 올려놓은 데 있다. 더구나 저우언라이 같은 참된 사회주의자도 있었다. 전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전략에 맞서 제3세계를 대변해온 외교노선이 바로 저우의 노고가 아니었던가.

동유럽이 무너지기 전에 이미 중국은 초급사회주의 단계론으로 개혁에 나섰다. 하지만 덩샤오핑이 숨진 뒤 초급단계론은 시나브로 목표를 잃고 있다. 고구려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 공산당의 몰골은 자신이 지금 얼마나 극우정당으로 타락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신호’이다.

물론, 그것이 미국을 겨냥한 중국의 전략적 선택이라면, 달리 할말이 없다. 하지만 한-중, 한-일, 중-일, 일본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사이에 곰비임비 갈등의 골이 깊어 가는 현실 뒤에는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전략이 똬리 틀고 있다. 중국공산당이 그 전략에 말려가는 꼴은 보기 딱하다. 더구나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동아시아 민중에게 돌아올 터이다.

얼마 전 일본 신문노련 중앙집행위원회에 참석해 초청강연을 했을 때다. 일본 언론인들에게 고이즈미의 신사 참배에서 일본 풍경화가 아니라 미국의 그림자를 읽는다고 강조했다. 그 그림자를, 고구려가 중국사라는 중국공산당의 오만에서도 읽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중국공산당이 부국강병을 내걸고 일본이 우향우로 돌진하는 오늘, 한국의 민중운동에 주어진 사명은 그만큼 크고 깊다. 문제의 핵심은 오늘 이땅의 민중이 그 과제를 풀어갈 의지를 얼마나 지녔는지에 있다.

(한겨레신문 / 손석춘 2004-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