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창)] 모순 시대, 지금이야말로

세상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과거사를 정리한다고 여야가 옥신각신하는 사이 역사를 아예 송두리째 도둑맞고 있는 것이그렇고, 밥을 안치기도 전에 자기 밥그릇 크기를 가지고 다투는 노사가 재미있고도 한심해서 하는 소리다.

정말 세상 돌아가는 것이 마치 계곡에 텐트 쳤다가 불어난 급류에 떠내려가는 식이다. 아무리 더위가 싫기로서니 폭포 밑에 잠자리를 꾸민단 말인가? 물론 그 쏟아 붓는 폭포를 상상할 수 없기에 그러겠지만, 폭염으로부터 피신했다가 폭우에 당하는 조급한 어리석음이 사회 곳곳마다 만연하고있지 않은가? 우리는 논리의 시대에 살면서 동시에 모순의 시대에 살고 있다. 평화롭지만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사회의 지도자는 정치인도 종교인도 교육자도 아닌 바로 시대 자체일는지 모른다. 흐름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것이다. 그것도 이상한 흐름이. 사람은 그저 들러리일 뿐이다.그래서 중심은 텅 비고 주변만 널려있다. 우리의 정신세계가 왜 이리 황폐한가? 중고교 교실에서 역사를 몰아내고, 대학에서 사학과가 사라지도록 방치한 후에 나타나는 역사의 재앙인가? 놀부가 흥부 몰아내듯 역사를 푸대접한 결과가 이제 나타나는 것인가? 그것을 이제야 알았단 말인가? 알면또 뭣할 것인가? 내일이면 잊을 것을. 우리는 역시 기억의 밤과 망각의 낮을 번갈아 살고 있지 않은가? 학교는 많은데 사회와 사람들은 더욱 무지해지는 것도 모순의 하나이다.

지식은 끊임없이 생산되지만 지혜와 교양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것도 모순이다. 무엇보다도 과거가 없는 나라는, 영국 역사가인 에릭 홉스범이 말했듯이, 그 자체가 모순이다. 국가를 국가가 되도록 만드는 것도 과거요, 한 국가가 다른 국가와 다른 고유한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는 것도 과거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과거는 없고 현재만 있으니, 있다면 각자의 과거만 있으니, 어찌 정체성 시비가 없을 수 있으리요? 우리는 고구려로부터 너무도 멀리 왔다. 광개토가 부동산가게 이름으로 전락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시비를 따지기에 앞서 역사 속에서 모두 죄인이요 공범이다. 이 같은 인식 없이 정체성이라는 새로운 미래는확립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우리 역사의 광개토를 시도해볼 만한 때요, 서북공정의 깃발을 들어올릴 적기가 아닌가?

(한국일보 2004-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