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고구려사 왜곡, 연구성과 번역만으로 해결 안돼"

문제는 '왜'가 아니라 '어떻게'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이었다. 여야 의원들과 정부, 학계인사들이 이러한 해답을 찾기 위해 11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대책' 토론회를 열었다.

중국정부의 고구려사 왜곡이 가져올 파장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오래 전부터 논의가 되어왔고, 국회에서도 결의안 채택과 특위 구성을 준비하고 있어 큰 틀에서 이견은 없었다. 열린우리당 이경숙, 노웅래 의원이 준비한 토론회에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과 손봉숙 민주당 의원이 축사를 하고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이 토론자로 나서는 등 여야가 모처럼 정파적 이해를 초월해 단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이 "일부 언론과 지식인들이 '현 정부와 집권당이 너무 친중(親中)적이어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분열적 행태"라며 문제를 제기했을 뿐 이번 사안을 놓고 정치적 공방도 없었다. 다만, 앞으로의 대책을 놓고 우리 정부와 학계, 정치권 모두 부실한 준비로 인해 자칫 감정적 대응에만 머물 수 있다는 우려가 부상했다.

최광식(고구려연구재단 상임이사) 고려대 교수는 "일본은 검인정 교과서들중의 하나인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문제가 됐지만 중국의 역사왜곡에는 정부기관이 나서고 있다"며 "그런 점에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사건보다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며 범정부 차원의 대응을 주문했다.

손 의원도 "정부가 외교적 마찰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이번에는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단호한 대처를 주문했다.

외교부 아태국장 "강경 어조만을 쓸 수는 없는 일"

그러나 지난 6∼7일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정부에 고구려사 왜곡을 항의하고 돌아온 박준우 외교부 아태국장은 이같은 요구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박 국장은 "과거사 관련 교섭을 십여년 해봤지만 이번만큼 강한 입장을 전한 적이 없었다"면서도 "외교관은 기본적으로 간접적·우회적 어법을 쓰는데, 일반인이 보기에는 정부가 유약하고 안이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교섭상대가 있는 마당에 언론 플레이를 하듯 강경 어조만 쓸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발제를 맡은 서영수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는 "문화재청과 국사편찬의 본산 국사편찬위원회, 중국의 사회과학원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연구기관인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은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했고, 지난 3월 발족한 고구려연구재단은 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설립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17명의 전문연구원을 채용해 6월부터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간 고구려연구재단은 연구공간이 협소해서 명실상부한 연구기관이라고 할 수 있을 지 의심스럽다"며 연구재단의 기능강화를 주문했다.

한국사 범주에만 갇혀있는 우리나라 고구려사 연구의 한계 때문에 고구려를 중국 동북부의 소수민족중 하나로 간주하는 중국의 시각과 계속적인 충돌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박선영(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중국특위 위원) 포항공대 교수는 "제대로 된 고구려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중국사료들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와 함께 만주에 거주했던 다양한 민족들의 역사와 문화풍속도 함께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대처방법은 단순히 고구려사 연구성과를 영어로 번역해 세계만방에 알린다고 해결된 문제가 아니다"며 "대처방안이 양국이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단순한 민족주의 고취가 될 수 있어 국내외로부터 반감부터 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방청석에서 토론을 지켜보다가 발언권을 얻은 강창일 열린우리당 의원은 "현재로서는 어려움이 많지만, 친한파를 중심으로 중국 내에서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한중의 양심적인 학자들이 합리적인 이론을 정립해나가면 양국간에 조성된 감정적 대립도 수그러들 것"이라며 낙관론을 피력했다.

(오마이뉴스 / 손병관 기자 2004-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