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디로가는가] 외교정책

고구려 역사왜곡으로 빚어진 한·중 관계가 수교 12년만에 최대의 고비를 맞고 있다. 세계가 중국 경제를 경이의 눈으로 쳐다보면서 ‘묻지마 투자’를 하는 동안 중국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청사진을 세우고 내실을 다지며 한걸음씩 내딛고 있다. 중국이 가고 있는 방향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박준우 외교통상부 아·태국장이 지난 6일 고구려 역사 왜곡 문제를 따지기 위해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중국 고위관리들을 만났을 때다. 당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 부부장 등 고위관리들은 “우리의 당면 목표는 9백60만㎢의 국토를 부유하게 하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경제 발전에 신경을 쓰느라 영토확장 등 다른 것에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는 설명이다. 한동안 중국 새 지도부의 집권 원칙으로 언급되던 ‘화평굴기’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그러나 정작 화평굴기 원칙은 현재 당내의 세찬 도전을 받고 있으며 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평화롭게 일어선다’는 의미의 ‘화평굴기’는 정비젠(鄭必堅) 중앙당교 부교장이 이끄는 태스크 포스팀이 지난해 찾아낸 이론으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이끄는 중국 현 지도부의 집권 원칙으로 급부상했다. 이들 중국 지도부의 잦은 언급으로 국내외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화평굴기는 이웃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과 평화적인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선언이다. 서방이 제기하고 있는 중국 위협론에 대한 반대 논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들어 이 용어가 관영 언론 매체에서 사라졌다. 원자바오 총리가 지난 3월 전인대 개막식 당시 언급한 이후 지도부가 언급을 하지 않으면서 자취를 감추고 만 것이다.

이에 대해 공산당 소식통들은 화평굴기 원칙이 당내 토론을 통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가장 큰 논쟁거리는 대만 문제다. 대만이 독립운동을 펼 경우 부득이 무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평화롭게 일어선다는 화평굴기는 현실을 도외시한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더욱이 주변 국가들과 끊임없는 영토분쟁과 외교분쟁을 맞고 있는 현실을 볼 때도 걸맞지 않은 정책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이밖에 ‘굴기’라는 표현은 세계에서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국과 맞서겠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2002년 11월 제16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결정한 ‘2020년 전면 소강(小康·먹고 살 만한 수준)사회 건설’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보다 못하다는 것이 대세인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들은 중국 현 지도부가 화평굴기 원칙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달 24일 정치국 회의에서 논의한 부국강병(富國强兵) 원칙이 주목을 받고 있다. 경제발전을 위한 부국과 함께 국방력 강화를 통한 강병을 동시에 추진, 대만해협 사태 등에 적극 대처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경향신문 / 홍인표 베이징특파원 2004-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