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고구려사 왜곡'에 담긴 의미

`고구려사 논란'이 뜨거워지면서 과연 중국의 행보를 어떻게 봐야하는가에 대해 구구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땅의 역사'를 지향하는 중국의 행태를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중국이 현재 점유하고 있는 영토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로 봐야 한다는 해로운 역사해석이 문제의 출발점에 있기는 하다.

하지만 원주민을 정복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 미국이나 호주 등이 `땅의 역사' 를 주창하고 있지 않는데서 보듯 중국의 최근 모습은 보다 다양한 해석을 통해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우선 `땅의 역사'를 중시해보자. 잘 알다시피 중국은 한족(漢族)과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돼있다.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한족은 물론 나머지 소수민족의 역사를 모두 중국의 역사로 해석하자는 게 중국의 시도다. 한마디로 `현재'를 기준으로 `과 거'를 모두 흡수하는 소급법을 동원한 셈이다.

55개 소수민족에는 조선족은 물론 몽골, 티베트, 위구르, 회족 등이 포함돼있다. 최근 중국에서 한족과 소수민족의 구분법 대신 `중화민족(中華民族)'이란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과거 한족 왕조를 멸망시키거나 대규모 전쟁을 치른 거란족 이나 여진족, 몽골족, 만주족의 역사도 모두 중국의 역사가 된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와 싸운 전쟁은 `민족 내부의 분쟁'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얼마전 중국인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던 악비(岳飛) 논쟁은 최근 중국의 흐름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단면이다. 악비는 이민족인 금나라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 간신 진회(秦檜)의 모함으로 옥중에서 처형된 남송(南宋)시대 충신이다.

우리로 치면 이순신 장군으로 볼 수 있는 이 민족적 영웅에 대해 중국 당국이 지난 2002년에 `중고교 역사교육지침'을 개정하면서 `악비는 더이상 민족영웅이 아니다'는 원칙을 세웠다. 악비가 싸웠던 대상인 금나라가 타국이 아니라 바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민족끼리 싸운 인물'을 민족의 영웅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의 필요에 의해 과거의 역사를 완전히 새롭게 해석(또는 견강부회)하는 중국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하나, 중국이 `땅의 역사'를 강조하는 데에는 변경관리의 측면이 강하다. 현재 중국 주변에 있는 국가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소수민족은 조선족(한국 또는 북한)과 몽골족(몽고), 하사크족(카자흐스탄), 티베트족(달라이라마 망명정부), 대만 등이 있다.

현재 중국 땅에 속해있는 내몽고가 언제 다시 외몽고와 통합을 얘기할 지 모르는 상황이고, 티베트족이 독립을 요구할 지 모른다. `만주벌판 회복'을 운운하는 한민족이 배후로 있는 조선족은 말할 것도 없다.

200만 조선족이 한민족과 결합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중국으로서는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과거 중국 당국이 선양(瀋陽) 총영사관 개설에 소극적이었고, 이른바 동북3성에 대한 한국인의 접근에 신중하게 나선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되고 있다. 게다가 얼마전에는 한국에 불법체류하는 조선족 수만명이 집단으로 `한국국적' 을 요구하고 나선 적도 있다.

마지막으로 간과해선 안되는 것이 `제국으로서의 중국'의 역사이다. 잘 알다시피 한(漢)족의 작은 역사에서 출발한 중국은 오랜 세월 이민족, 특히 유목민족의 침략을 받았으나 끝내는 동화(同化)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흔히 오랑캐라 부른 이민족의 통치를 길게는 수백년간 받은 적도 적지 않았고, 오랑캐들을 방비하려고 만리장성을 쌓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은 끝내 모든 이질적 요소를 한데로 모아 용광로(鎔鑛爐)에 녹이고는 `대제국'을 이뤄냈다. 그리고 그 대제국은 시대를 달리했을 뿐 상당히 유사한 궤적을 보여줬다. 바로 창업(創業)-수성(守成)의 단계를 거친 왕조들이 대부분 제국의 팽창(膨脹)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1945년 세워진 사회주의 중국도 단순하게 공산왕조라고 생각한다면 이제 수성의 단계를 넘어 팽창을 시도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고구려사 왜곡이 새로운 팽창의 길에 들어선 중국을 엿보게 하는 작은 창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욱일승천하는 중국경제의 급성장, 13억인구가 `잘살아보자'고 외치며 밤을 낮 삼아 일하는 요즘 중국을 보면서 조만간 눈앞에 다가올 `강한 중국'이 과거 팽창에 나선 왕조로 급변해 `변방 한국'을 대하려한다면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다.

이제 겨우 한중 수교 12주년이다. 앞으로 또다시 12년, 아니 30년, 100년이 지난후 한중관계가 어떤 모습이 될 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연합뉴스 / 이우탁 상하이특파원 2004-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