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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名酒)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가람 이병기 선생(1891~1968년) 가문에서
전승되던 호산춘(壺山春)이 대량 생산된다고 한다. ‘하늘의 향기를 담은 술’이란 뜻으로 명명된 이 술은 전통 제조기법을 고수하면서 현대인의
취향에 맞게 알코올 도수 13%로 마시기에 부담이 없고 은은한 향과 깊은 맛이 특징이다.
호산춘의 제조기법은 가람 선생의 본가(전북 익산시 어산면 원수리)에서 막내 며느리인 윤옥병씨(73)에게 전수됐으나 가람이 세상을 뜬 후 그
명맥이 끊겼었다.
▲고구려의 지주(旨酒)는 술 누룩을 띄워 만든 곡주로, 중국까지 널리 알려졌던 명주였다. 누룩을 사용한 이 같은 곡주는 조선에 와서
양조문화로 전파되면서 집안마다 특색있는 술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1907년 주세령이 내려지면서 전래주는 ‘밀주’ 신세를 면치 못했고 그만큼
일본의 우리 술 탄압은 심했다.
그러던 우리 고유의 술이 그나마 빛을 보게 된 것은 서울올림픽이 계기였다고 한다. 정부에서 전통민속주를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는데 서울의
문배주, 충남의 두견주, 경주의 법주 등은 국가 지정 향토주가 됐다. 또 지방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전승 보존되고 있는 것은 안동 소주, 이리
이강주, 경기 동동주 등이다.
이 중 예로부터 평양의 명주로 알려진 문배주는 1991년 구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제주에 왔을 때 만찬회에 든 술로 유명하다.
선물용으로 준비한 술까지 전부 마시자 서울에서 한밤에 헬기로 문배주를 날랐다는 일화도 전한다.
▲제주에서도 1995년 4월 제주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11호로 ‘고소리술’이 민속주로 이름을 올렸다. 이 술은 메좁쌀과 누룩을 사용해
빚어낸 증류주로, 고려 때부터 전해오던 오래된 술이다. 1653년(효종 4년) 제주 목사를 지낸 이원진이 편수한 ‘탐라지’에도 언급되고 있다.
옛부터 제주에서는 쌀이 귀해 쌀로 빚은 청주는 드물고 주로 좁쌀로 오메기술이나 소주를 빚었던 것이다.
중국 진 때의 죽림칠현 중 한 사람 완적은 친구가 찾아올 때 술병을 들고 오면 바른 눈동자로 반겨 맞고, 빈손으로 찾아오면 눈동자를 옆으로
흘겨 냉대했다고 한다. ‘백안시(白眼視)’라는 말이 이 때 나왔다.
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는 요즘, 가람이 즐겨 마셨다는 호산춘은 아니더라도 시원한 물가로 소주나 한병 들고 그리운 친구를 찾아 나서 봄이
어떻까.
(제주일보 / 김홍철 편집부국장대우 200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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