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구려 빼앗기’]<1>중국 왜 이러나

《“21세기 중화(中華) 역사인식의 부활.” 중국 외교부가 홈페이지에서 1948년 이전의 한국사 기술을 삭제한 데 대한 학계의 경고음이다. 중국은 고구려를 한반도 삼국(三國)의 일부로 기술하라는 한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행동으로써 한국의 사관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중국의 한반도 역사인식 부정. 그 의도와 목표지점을 시리즈로 진단한다.》

중국 외교부가 홈페이지에서 1948년 이전의 한국사를 삭제한 데 대해 한국 학계의 반응은 “예상됐던 일”이라는 것이다. 학자들의 비판은 먼저 ‘동북공정(東北工程)은 학술적 문제’라는 중국 정부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한국 외교부가 이렇다 할 준비를 못한 데 쏟아진다.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임에도 손을 놓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격이라는 지적이다.

▽ 노골화된 ‘동북공정’의 목표지점=고려대 최광식 교수(고구려연구재단 상임이사)는 “외교부는 그동안 고구려사 문제는 학술차원의 문제이니 중국의 사회과학원과 고구려연구재단이 풀어갈 문제라고 미뤄왔지만 중국이 막상 정부 차원에서 포문을 열기 시작하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 말했다.

박선영 포항공대 교수(중국사)는 이번 삭제에 대해 “당장 분쟁의 불씨를 줄이는 제스처이자 한국 길들이기”라고 분석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고구려사 기술부분을 복원하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되 문제제기의 소지를 아예 없애 이 문제가 국제사회에 여론화되는 것 자체를 피해가겠다는 전술이라는 지적이다.

최종필 일본 오사카경제법대 교수는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은 인구 구성비로는 전체의 5% 내외지만 영토로는 70%를 차지한다”며 “동북공정은 이러한 소수민족을 관리하기 위한 국가전략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조선족은 55개 소수 민족 중 13번째로 인구가 많은 데다 한반도와 접경지대에 있기 때문에 중국이 신장위구르나 티베트보다도 더 신경을 쓰는 지역”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다른 소수민족의 경우 자치주의 장(長)은 해당 민족 출신을 임명하지만 조선족 자치주만은 중국인으로 임명하는 것이 중국 정부가 이 지역에 대해 갖고 있는 불안감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한국외국어대 여호규 교수는 “지금까지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고 여론이 악화되면 정부가 이에 밀려서 중국정부에 시정을 요구하는 수순이었다”며 “지금이라도 범정부적 차원에서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에 대응할 논리와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고구려, 한반도와의 연결고리 끊기 계속돼=학계는 실용주의 노선을 취하는 중국이 이번 삭제로 일단 미봉적 대응을 한 뒤 고구려와 한반도의 연결고리를 끊는 이론화 작업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예측한다.

일례로 고구려를 중국사로 귀속시키기 위해 이론작업을 벌여온 중국학자들이 봉착했던 최대의 난제는 고구려와 백제를 같은 민족으로 기록한 자국의 역사서였다. 고구려까지는 중국의 소수민족 정권으로 이론화하는 것이 가능했으나 한반도 내부의 백제를 소수민족 정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것.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더 이상 한반도와 연결고리를 갖지 않은 것으로 설명하는 이론개발에 동북공정 참여 학자들은 총력을 기울여 왔다.

박선영 교수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의 역사교과서들은 현재 옌볜에 사는 조선족의 기원을 고구려 부여까지 소급해갔다. 이제는 그런 역사기술을 찾을 수 없다. 현존 조선족들은 조선시대에 건너온 이주민족으로 고구려와 아무런 연계성이 없다고 설명한다”고 말했다.

신형식 상명대 초빙교수(백산학회 회장)는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뿌리 깊은 교육으로 인해 학자들조차 다른 나라의 연구서는 거들떠도 안 본다”며 “중국 정부와 사안별로 일대일 대응을 펼치는 것은 전략적으로 한국만 손해”라고 말했다.

따라서 중국을 직접 설득하기보다는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일에 먼저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고구려사와 관련한 국내 연구서들을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 일본어 독일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하루빨리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어로 번역된 한국 역사서는 ‘한국사신론’ 등 개설서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고구려사 등 고대사 관련 책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최광식 교수도 “중국과 국경문제로 첨예한 입장에 놓여 있는 러시아 인도 일본, 그리고 원나라를 두고 한국처럼 역사 침탈을 당하고 있는 몽골 등을 우리의 전략적 파트너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 외교부 “中대사 불러 실망과 유감 표시” ▼

중국 외교부가 5일 홈페이지에서 한국의 현대사 이전 부분을 통째로 삭제함에 따라 고구려사 왜곡을 둘러싼 한중간 마찰은 제2라운드에 접어들게 됐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고구려사가 중국사의 일부라는 인식의 본질은 바꾸지 않겠지만 한국과의 외교적 마찰 요인은 일단 잘라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는 일단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당국자는 “오늘 리빈 주한 중국대사를 불러 실망과 유감의 뜻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에 대한 실망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구체적인 답변을 미룬 채 “고구려사는 민족사에서 불가분의 부분으로 양보할 수 없는 만큼 (중국의 왜곡을) 바로잡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중국의 조치가 부족한 때문이냐”는 질문엔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정부가 중국의 조치를 미봉책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번 조치를 문제의 종결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실제로 외교부 안팎에선 중국의 대응이 큰 나라답지 못하다는 반응이 많다. 양국 외교부가 올해 2월 고구려사에 관한 이견을 ‘학술 문제로 해결하자’고 합의한 지 불과 2개월 만에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고구려 대목을 삭제한 것은 외교관례상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이번 조치를 한국에 통보할 때도 외교적 수사(修辭)로나마 유감을 표명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중국 외교부가 주변국의 역사를 고대사부터 설명하던 관행을 깨고, 한국사를 ‘건국 이후’만 설명한 것은 한국 고대사를 통째로 부정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소지가 없지 않다.

다만 중국이 이날 홈페이지에서 일본이 주장해 온 ‘임나일본부설’을 지운 것은 한국의 입장을 그나마 배려한 조치로 평가할 만하다.

일본이 5세기 초 한반도 남부에 진출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은 한일 고대사의 실체적 진실을 놓고 양국이 논란을 벌여온 핵심 쟁점이다. 임나일본부설을 인정치 않는 한국은 그동안 중국 정부에 대해 이에 관한 부분을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지워줄 것을 요구했다.

(동아일보 / 김승련 기자 2004-8-5)

[중국의 ‘고구려 빼앗기’]<2>중국정부 이중적 행보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철저히 이중적이다. 학술적 차원의 해결을 먼저 제안하고도 4월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고구려를 삭제했다가 한국의 거센 항의에 아예 정부 수립 이전 역사를 지워버렸다. 외교 분쟁 확대를 모면하기 위해 문제를 일단 덮어버리겠다는 태도다. 한편으로 고구려사 왜곡의 산파역인 국책사업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예정대로 추진하고 있으며 고구려 유적이 산재한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에서는 관광객 등을 상대로 ‘고구려사는 중국사’라는 현장 교육도 계속하고 있다.》

▽ ‘역사 침략’은 계속될 것=한중간 외교 접촉과 관계없이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기 위한 중국측의 논리 개발과 자료 축적 작업은 계속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한 조선족 학자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만주지방에 대한 역사적 인식, 한반도 통일 이후의 상황, 중화주의적 역사관 등 다양한 요인이 얽혀 있는 만큼 한국이 시정을 요구한다고 해서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만주 역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족이 만주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기간은 1955년 이곳에서 독립 왕국을 건설하려 했던 가오강(高岡)사건 이후 채 50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로 내려온 한민족과 요(堯) 금(金) 청(淸) 등 북방민족이 만주를 지배해온 데 이어 러시아의 침탈과 일본의 만주국(1932∼45) 건국으로 이 지역에서의 역사적 연고가 취약한 중국으로서는 이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중국은 한반도 통일 이후 간도 귀속문제 등을 둘러싸고 영토분쟁이 일어날 가능성과 함께 통일 과정에서 북한 난민의 대거 유입으로 북-중 접경지역이 한국의 영향권에 들어가면 역사적 연고권이 또다시 약화될 것으로 우려한다”며 “고구려사 왜곡은 이런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 고구려사 왜곡의 추진 주체는?=고구려사 왜곡 작업인 ‘동북공정’은 국무원 산하 중국 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이 주관한다. 대부분의 중국학자들은 사회과학원의 동북공정 사업에는 순수 학술연구의 차원을 넘어 정치적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학자는 “중국 학계에서 발해사와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지만 한반도 역학관계의 급격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시점에 국책 연구기관을 통해 이를 강력히 추진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 통일은 ‘완충국’인 북한이 소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를 우려한 동북지방 정부와 이 지역의 중화주의적 역사관을 가진 학자들이 국경선을 현 압록강∼두만강에서 확실하게 결정지어야 한다는 점을 상부에 건의하고 이를 공산당 최고위 간부들이 수용했을 것으로 본다”고 추측했다.

▽ 수면 밑 비판의 목소리=중국 학계에서도 자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없지 않지만 사회체제 특성상 전혀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

한 중국학자는 “중국민들이 고구려나 고려, 조선 등이 중국에 조공을 바쳤던 변방의 속국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면서 “이는 고대 중국 역사서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구려사는 한국 역사의 핵심인 만큼 이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데 한국민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러나 정부가 잘못한다고 해서 이를 드러내놓고 말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중국의 한 국제정치 전문가는 “세계무대에서 중국의 급격한 국력 신장에 따라 ‘중국 위협론’이 나온 데 이어 대만문제 등을 둘러싸고 중국은 미국 일본 등과 잠재적 충돌 가능성을 안고 있다”며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역사 문제 때문에 한국을 반중(反中) 대열로 돌려세우는 것은 중국의 외교 전략상 큰 실수”라고 정부정책을 비판했다.

(동아일보 / 황유성 특파원 2004-8-6)

[중국의 ‘고구려 빼앗기’]<3>중국사 확장 전략

중국은 국경선이 긴 나라다. 그만큼 접경 국가와 영토분쟁이 잦다. 중국이 끊임없이 인접 국가나 자국 내 소수민족의 역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하려고 획책하는 것은 이런 영토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중국 역사해석의 기본 입장은 ‘현재 중국 영토 안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의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라는 현재 중심의 논리다. 여기에는 55개나 되는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이 한족(漢族)의 역사만 중국사라고 고집할 경우 국가 분열에 직면할 수 있다는 불안이 숨어 있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지금 내가 장악한 땅은 모두 내 것’이라는 제국주의적 영토관과 다를 바 없다. 이는 과거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상실한 영토를 회복하려는 중국 자신의 논리와도 정면으로 부딪친다. 중국은 홍콩 마카오를 되찾고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열도)를 두고 일본과 영토분쟁을 벌이면서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중국 영토이며 서구 열강과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빼앗긴 것이라고 국제 사회에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 자국 내 소수민족 역사, 모두 중국사라고 억지=중국 내에서 현재 가장 심각하게 소수민족의 봉기나 영토분쟁이 계속되는 지역은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이 중 티베트는 마오쩌둥(毛澤東) 통치기인 1950년 무력침공으로 중국의 영토가 됐다.

티베트가 중국에 장악된 것은 몽골족이 중국 대륙을 장악한 원(元)나라 때였다. 그러나 이때 원과 티베트는 티베트어로 ‘최왼(檀越·단월)’이라는 독특한 정치 종교적 관계를 맺었다. 즉 원은 티베트 영토를 티베트 불교 최고 고승(高僧)에게 공시(供施·우리말로 보시)하는 대신 티베트 승려들은 원 제국의 정신적 기초를 제공한다는 ‘호혜평등’의 계약이었다. 이런 관계는 명(明) 청(淸)대까지 지속됐다. 그러나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이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세워지자 티베트는 독립을 선언한다.

1950년 무력침공 때 중국은 최왼 관계가 호혜적 관계가 아니라 티베트가 중국의 속국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자신들의 티베트 병합을 합리화했다. 이에 대해 서강대 김한규 교수(사학)는 “티베트 민족과 한족(漢族)은 원대나 청대에 모두 몽골족이나 만주족이 세운 제국의 피지배자였을 뿐”이라며 “이를 근거로 동일한 중화민족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중국의 논리를 비판했다.

신장위구르가 중국의 직접 통치 아래 들어간 것은 청나라 때였다. 그 전까지 이 지역은 이슬람 문명의 영향을 받으며 여러 형태의 나라로 존재해 왔다. 독자성이 강했기 때문에 청이 무너진 뒤 여러 세력으로 나뉘었으나 통합세력을 이루지 못하다가 결국 중화인민공화국에 다시 복속됐다. 중국은 이 지역을 오로지 청나라 때의 점거만을 역사적 근거로 내세워 자국 영토로 삼은 것이다.

▽ 영토 회복 때는 제국주의 비난하며 여론 몰이=중국은 이처럼 자신들의 영토를 확장할 때는 과거 팽창정책을 펼칠 때의 역사를 근거로 끌어대지만 반대로 자신들이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으려 할 때는 서구 열강과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주의를 비판하는 이중전략을 구사한다. 홍콩과 마카오 반환과정에서 이런 이중성은 뚜렷이 드러났다.

마카오는 1553년 포르투갈에 의해 점령당한 뒤 1999년 중국이 돌려받기까지 446년간 포르투갈에 지배당했다. 1845년에는 포르투갈에 영구 할양이 결정되기도 했다. 홍콩도 1842년 난징(南京)조약으로 영국에 영구 할양됐던 땅이었다. 한시적으로 할양된 곳은 홍콩 본섬 전체가 아니라 1860년 베이징(北京)조약 등으로 추가 할양된 주룽(九龍)반도 등 신제(新界)지역이었다.

중국은 마카오와 홍콩을 돌려받기 위해 국제 사회에서 포르투갈 및 영국과 맺은 조약의 불평등성을 강조하면서 이들 지역의 할양은 서구제국주의 침략의 결과물이란 여론몰이를 꾸준히 펼쳤다. 그 결과 1972년 유엔 비(非)식민지화 특별위원회에서 홍콩과 마카오를 돌려받을 근거를 마련했으며 원래 영구 할양됐던 지역을 포함해 홍콩 전체를 완전히 돌려받았다.

이런 전략은 현재 일본과 영유권 분쟁 중인 댜오위다오에도 적용된다. 중국은 이 섬이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제국주의 세력이 무단 점거한 것이기 때문에 ‘1945년 이전의 일본 점령은 무효화돼야 한다’는 카이로선언과 포츠담선언에 의거해서 중국 영토로 반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909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상태에서 간도(間島)지역을 자국에 넘겨준 간도협약에 대해서는 카이로선언과 포츠담선언의 정신을 외면하고 있다.

포항공대 박선영 교수(중국사)는 “고구려사의 귀속문제는 결국 국제 사회로부터 얼마나 지지를 끌어내느냐에 달렸다”면서 “중국측 주장을 반박할 때 시야를 고구려사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중국이 현재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다른 지역까지 총체적으로 조망해 중국의 이중적 태도를 고발하고 그 모순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권재현 기자

▼ “고구려사가 중국사라면 광개토왕은 중국인인가” ▼

“(중국과) 전쟁이 난다고 하더라도 역사 없는 국민으로 사는 것보다 낫다.”

“고구려사가 중국사라면, 광개토대왕도 ‘되놈’이란 말인가.”

외교통상부 홈페이지(www.mofat.go.kr)에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와 관련해 중국을 비난하고, 정부의 부실한 ‘예방외교력’을 질타하는 네티즌들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평소 하루 평균 10건 안팎에 불과하던 네티즌 의견이 7, 8일 이틀 동안에만 약 250건으로 폭증했다.

필명 ‘심희수’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때문에) 우리나라가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착잡했다”며 “북핵과 연관지어 고구려사에 대해 (중국에) 한마디도 못하는 건 소인배나 하는 짓”이라고 중국과 우리 정부를 함께 비난했다. ‘김성환’도 “중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염치도 잠시 접어두는 민족”이라며 “도둑놈(중국)에겐 그에 걸맞게 대우해야 한다”며 정부의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일부 네티즌은 ‘기발한’ 대응책도 제시했다.

‘강태우’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우리는 ‘중국공정’을 시작하자”며 “중국이 ‘역사 왜곡’이라고 항의하면 ‘정치와 무관한 학술적 문제’라고 맞대응하자”고 말했다. ‘박종엽’은 “아테네 올림픽 입장 때 한반도 깃발 윗부분에 점선으로 만주 대륙을 그려놓고, ‘KOREA’ 표기도 ‘KOGOOREA’(고구려)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광개토’는 “북한과 함께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에 불참하자”고 말했다. 이 외에도 “광개토대왕 얼굴이 실린 10만원권을 만들자” “‘맞불작전’ 차원에서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한국으로 초청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동아일보 / 부형권 기자 2004-8-8)

[중국의 ‘고구려 빼앗기’]<4>한국의 고구려 연구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논리에 맞서기 위한 한국학계 대응에 시동이 걸렸다. 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은 지난주 4개의 공동기획연구 과제를 선정했다. 이번 연구과제들은 6월부터 본격 활동에 들어간 고구려연구재단이 중국측을 겨냥해 준비 중인 ‘무기’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선정된 4개 프로젝트는 ‘고조선과 부여의 주민 구성 및 국가형성’(연구책임자 이청규 영남대 교수), ‘고구려와 발해의 계승성’(연구책임자 한규철 경성대 교수), ‘한중 외교관계에 대한 연구-조공과 책봉을 중심으로’(연구책임자 이석현 경성대 교수), ‘근대 동아시아 국경획정 과정’(연구책임자 하종문 한신대 교수) 등이다. 논쟁이 붙은 고구려사 연구를 직접 겨냥하기보다는 중국측 동북공정의 배후목표까지를 포괄해 압박전략을 펼치겠다는 포석이 눈에 띈다.

이는 동북공정이 단지 고구려사만이 아니라 고조선과 부여, 발해 역사까지의 ‘중국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을 뚜렷이 의식한 것이다. 고구려는 부여를 계승한 국가이고 부여는 다시 고조선과 고구려를 연결하는 고리다. 중국이 고구려에 앞서 자국사로 편입한 발해사가 고구려와 연결되는 것 역시 말할 것도 없다.

또 동아시아의 외교 관행이었던 조공-책봉 문제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근거를 무력화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여기에 동북공정이 결국 중국 동북지역에 대한 중국의 점유권을 확고히 하려는 데 그 정치적 목표가 있다는 점에서 간도(間島)를 포함한 근대 국경획정의 문제도 주요 연구과제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연구의 핵심내용을 소개한다.

▽ 고조선과 부여=청동기시대 이래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에 걸쳐 동질적 문화를 향유한 집단을 예맥(濊貊)이라고 불러왔는데 이들은 생태적 정치적 조건에 따라 여러 종족으로 나뉘었다. 이 과정에서 기원전 3세기 이후 철기문화의 확산과 함께 한반도 남부에 예맥의 새로운 단계의 정치적 조직체로서 ‘한(韓)’이 부각됐다. 예맥족은 중원(中原)의 문화와 다른 독자적 문화를 형성했다. 비파형 청동검 문화를 바탕으로 고조선이 성립됐고, 중원의 철기문화를 만나면서도 이에 흡수되지 않고 독자성을 유지했다. 중국의 영향을 강조하는 기자(箕子)를 고조선 왕에 봉했다는 기자봉국설은 허구로 밝혀지고 있다. 부여는 고조선, 고구려와 상당기간 공존하면서 예맥문화권을 지탱하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 발해의 고구려 계승성=발해는 △영토 △주민구성 △고분과 건축 △복식 벽화 음악 등에서 고구려를 계승하고 있다. 발해의 전성기 영역은 옛 고구려 영토 대부분을 아우른다. 역사적으로 중국이 말갈이라고 칭한 주민들이 조선시대 평안도와 함경도 주민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종족성보다는 지역적인 연관성이 강하다. 따라서 말갈족을 굳이 고구려인과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발해의 고분은 초기 대부분 돌을 이용한 석실분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벽돌분과 차별화된다. 신라와 함께 봉황무늬가 그려진 연화문와당이 많이 쓰였고 온돌을 사용했다는 점은 중국과 분명한 문화적 차별성을 드러낸다.

▽ 조공-책봉 관계=조공-책봉은 지배 피지배의 관계가 아니라 전근대 동아시아 외교의 전형이었다. 조공-책봉은 서주(西周)시대 이후 중국의 천자와 제후간의 대내적 관계였지만 진(秦)과 한(漢)의 통일제국 출현 이후 중국과 주변 이민족 국가간의 외교 형식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시대변화에 맞춰 다양하게 변용된 조공-책봉의 관계를 통일국가도 세우지 못한 선진(先秦)시대의 윤리관에 뜯어 맞추는 것은 왜곡된 역사인식이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 △고대 한중 외교 △고려와 송의 외교 △고려와 요·금의 외교 △명·청(明·淸)교체기 한중 관계로 나누어 변용과정을 살펴본다.

▽ 근대의 국경획정 문제=한국과 중국뿐 아니라 중국과 국경분쟁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 러시아 베트남을 포괄해 동아시아의 국경문제를 살펴봄으로써 중국측 논리의 허점을 드러낸다. 1909년 간도협약까지를 포함해 한중간 국경선의 연원 문제, 러시아와 한국의 국경문제, 연해주를 둘러싼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문제, 일본과 러시아의 국경문제, 중국과 프랑스간 베트남 국경획정 문제를 아울러 연구함으로써 한국측 논리의 보편성을 추구한다.

(동아일보 / 권재현 기자 2004-8-9)

[중국의 ‘고구려 빼앗기’]<5·끝>역사 왜곡을 넘어서

고구려사가 한국사라는 사실을 한국인들은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아예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거나, 중국의 주장이 이의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나 학계가 고구려사를 포함한 고대사(古代史)를 한국의 관점에서 세계에 알리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민단체 등 민간 부문이 한발 앞서 가는 형국이다.

▽ 한국사 연구 해외소개 빈약 = 고구려사를 포함해 한국 고대사에 대한 우리 학계의 연구 성과가 해외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기백 선생의 저서 ‘한국사신론(韓國史新論)’이 영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으로 번역 출간된 것이 고작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아시아학회에서 고구려사에 관해서는 고분벽화 등이 미술사 차원에서 다뤄지는 정도다. 일본 학회에서는 광개토대왕비 연구 정도가 관심 있는 주제다.

국내에서 영문으로 정기 발간되는 한국학 관련 잡지로는 정신문화연구원의 ‘The Journal of Korean Studies’,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한국학연구소가 발간하는 ‘Korean Studies’ 등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학술진흥재단이 몇 년 전부터 국내 학술지에 게재되는 한국사 관련 논문에 영문 초록(抄錄)을 첨부하도록 하고 있는 것도 이같이 한국사 관련 서적이나 연구결과의 영문 소개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의 해외 주요 학회 참여 빈도도 낮다. 무엇보다 언어구사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반면 일본은 저팬파운데이션(Japan Foundation)을 통해 일본 내에서 이뤄진 최신 연구를 지속적으로 미국과 유럽학계에 소개해오고 있다. 또 미국 내 중국학 전공학자들은 중국계가 많은데 이들은 학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중국 본토에서 이뤄지는 연구 성과를 곧바로 미국에 알린다.

이렇게 해서 미국이나 유럽의 아시아사 연구자가 한국사에 접하는 경로는 대부분 중국사나 일본사를 통해서다. 미국 유럽의 학자나 학생들이 중국측의 논리가 반영된 고구려사를 연구하거나 배울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 한국학 연구 해외에 알리는 중장기적 전담기구 절실 = 국내 학자들은 지금이야말로 고구려사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사, 더 나아가서는 한국학 전반을 장기적 안목으로 해외에 소개할 독립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울산대 전호태 교수(역사문화학)는 “고구려연구재단으로는 연구규모도 인력도 부족하다. 10∼20년 뒤에 지금의 불리한 상황을 뒤집을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는 정부의 공식기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해외 한인학자들을 지원하는 방안도 제시된다. 지난달 말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 츠펑(赤峰)시에서 열린 고대북방문화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했던 임효재 서울대 교수는 “중국 내 조선족 학자들이 마음으로는 한국을 돕는 연구를 하고 싶지만 재정적 지원이 부족해 중국측 눈치만 보고 있다”고 전했다.

▽ 아래로부터의 노력 =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당시 서독)은 과거 자신의 식민지배로 막대한 피해를 보았던 폴란드와 화해 차원에서 오랜 협의를 거쳐 양국의 역사 및 지리 교과서를 성공적으로 수정했다.

독일, 폴란드와는 역사적 배경이 다르지만 한국의 시민단체인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교육연대)’도 중국 일본의 단체들과 협의해 공동 역사 부교재 발간을 앞두고 있다.

올해 말 발간예정인 이 역사 부교재는 주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응해 만들어진 것으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러나 교육연대측은 2005년 중국 교과서 개정시 왜곡된 내용이 실릴 것에 대비해 중국 교과서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교육연대의 박장일 중국교과서 특위 위원장은 “기존의 한중일 네트워크를 통해 중국측 입장을 확인하고 개선할 부분에 대해서는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며 “대만도 이 네트워크에 포함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간 부문에서 한국사를 해외에 올바로 알리는 데는 사이버 민간외교사절단 ‘반크(VANK)’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펜팔활동을 통해 해외 각국의 인터넷 사이트나 교과서 등에 소개된 한국사의 오류를 줄기차게 지적해온 반크는 현재 1만3800여명의 회원들이 왜곡된 고구려사를 바로잡는 데 힘쓰고 있다.

반크의 박기태 단장은 “중국의 역사 왜곡을 시정하려면 한국이 아니라 세계의 압력이 필요하다”며 “외국인 친구를 사귀면서도 올바른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친숙하게 만든다면 10여년 뒤에는 이들이 커다란 힘이 되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 민동용 기자 2004-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