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중국은 '求同存異'를 잊었나

12년 전의 한·중(韓中) 수교는 ‘미래지향적’ 자세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중국어로는 ‘샹첸칸(向前看)’, 영어로는 ‘룩 포워드 투(look forward to)’로 표현됐다. 과거를 묻지 말자는 뜻이었다. 과거란 중국군의 한국전 참전 문제였다.

1992년 8월 24일 수교 공동성명이 양국에서 발표된 직후 기자회견에 나온 중국 외교부의 우젠민(吳建民) 대변인은 “중국이 과거사에 대해 사과했다는데…”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사실무근이다. 쌍방교섭은 과거를 회고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교섭은 ‘샹첸칸’의 태도로 이루어졌다.” 그후 초대 중국대사로 부임한 장팅옌(張庭延) 대사는 10월 9일 서울에서 첫 기자회견 때 또 이런 말을 해서 우리 가슴을 아프게 했다. “중국이 한국전쟁 참전문제에 관해 교섭과정에서 유감을 표명했다는 보도는 근거가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는 문제라 생각된다.”

요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시도는 12년 전 한·중 수교 당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때 왜 우리가 중국의 한국전 참전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유감 표명을 받지 않았는가를 후회하게 만든다. 당시 이상옥(李相沃) 외무장관은 수교 발표 당일 밤 우리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중국측이 유감을 표명했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아니라는 것이 중국측 주장이었다. 그러나 좋은 게 좋다고 해서, 그리고 중국측이 ‘미래를 보자’고 하니 그냥 넘어갔던 것이었다.

그러나 “미래를 보자”던 중국이 지금 벌이고 있는 것은 고구려사를 꿀꺽 삼키자는 것이다. 바로 이런 미래를 위해 12년 전 우리는, 이른바 ‘항미원조(抗美援朝)’라는 구호 아래 이뤄진 중국군의 한국전 개입에 대한 사과도 받지 않고 호야호야 한 셈이 되고 말았다. 그러고는 지금껏 양국 정상의 상호방문 때 우리는 베이징(北京) 인민영웅기념탑에 헌화하지 않고, 중국측은 서울의 현충원 참배를 하지 않는 비정상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2년 전 수교 당시 중국측 인사들이 입에 침을 튀기며 하던 말은 ‘구동존이(求同存異)’라는 네 글자였다. 자신들이 제일 존경한다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한 말이라고 꼭 덧붙이며, “서로의 공통점을 먼저 발견하고, 이견은 드러내지 말고 뒤로 미루자”며 웃음을 흘렸던 그들이다. 그러더니 불과 12년 만에 ‘구동존이’는 어디가고 ‘구이존동(求異存同)’을 하다니, 참으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뿐이다. 고구려사를 놓고 서로 견해가 다르면, 문제로 드러내지 말고 조용히 해결하는 노력을 해야지, 이견이 있는 상태에서 고구려 유산을 유네스코에 등록하고, 고구려 유적지를 온통 시뻘건 플래카드로 뒤덮다니, 구이존동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중국에도 아킬레스건(腱)은 있다. 많다.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강제 점령, 인권, 파룬궁 탄압, 대만 문제 등은 중국이 아파하는 문제들이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그동안 이들 문제들에 대해 침묵해주는 우호적 태도를 유지해왔다. 여기에 간도(間島) 문제도 있다. 고구려 유적지는 대부분 서(西)간도 지방에 산재해있으며, 간도 문제에 관한 한 우리 정부는 여태까지 어떤 견해도 밝힌 일이 없다. 중국이 아파하는 문제를 우리가 슬슬 건드리면 중국은 당장 단교하자고 나올 것인가. 그래 가지고 국제적으로 웃음거리가 되고 싶은 걸까?

(조선일보 / 박승준 중국 전문기자 2004-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