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사회과학원 세계역사硏 연구실 주임>韓-中 감정악화는 곤란하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지난 1992년 수교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드높다. 이유는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고구려사의 귀속 문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지 않나 싶다. 그러나 양국 관계는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아주 중요 한 요인이다. 심지어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고 해도 좋다. 고구려사 문제로 한국의 학계나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반중 감정이나 주장이 너무 고조돼서는 곤란한 것이다. 여기에 수천년의 역사에 있어서 한·중 관계가 비교적 좋았다는 사실에 비춰볼 경우 더욱 그렇지 않나 싶다.

멀리 거슬러 올라갈 필요조차 없다. 명(明)나라 만력(萬曆) 때의 대사건 하나를 우선 거론해도 좋다. 당시 일본을 무력으로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을 침략하자 명나라가 국가의 운명을 걸고 군사적 원조에 나선 것이다. 이로 인해 명나라는 국력이 극도로 쇠퇴해 청나라에 의해 멸망당하는 비극을 맞고 말았으나 조선은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결코 버리지 않았다.

청나라와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명나라를 잊지 않은 행동으로 일관, 피를 나눈 혈맹으로서의 덕목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조선이 주위 국가들로부터 소중화(小中華)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것은 다 이런 사실과 관련이 있다.

청나라 말기에도 비슷한 케이스는 있었다. 일본이 조선을 다시 침략, 유린하고 있을 시기였다. 청나라는 과거 명나라의 사례를 따르는 대 용단을 내린다. 그러나 이때 이미 청나라의 국력은 쇠퇴일로를 걷고 있어서 일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역사에는 가설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청일전쟁 당시 청나라의 국력이 쇠퇴하지 않았다면 아마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또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진주와 민족 분열도 없었을지 모른다.

한·중간의 이런 일단의 역사에서 우리는 불후의 진리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의 동시 쇠락은 대체로 한반도의 혼란에서 비롯됐다는 사실 말이다. 또 이같은 동시 쇠락은 동북아를 비롯한 전체 아시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성싶다. 실제 이 사실을 반영하듯 청·일전쟁 후 조선은 물론이고 오키나와, 대만, 인도네시아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전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 야욕에 희생양이 됐다. 원세개( 袁世凱), 강유위(康有爲), 오패부(吳佩孚)를 비롯해 쑨원(孫文), 마오쩌둥(毛澤東), 장제스(蔣介石)등 중국 근현대의 유명 정치인들이 일본의 한반도 침략후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 독립을 지지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나 보인다.

한·중간의 우호적 관계는 아마도 날이 갈수록 동북아 평화와 안정의 상수(常數)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행히 지난 12년동안 양국 관계는 원만하게 발전해 왔다. 여기에 다행스럽게도 중국은 이른바 허핑줴치(和平堀起·평화스럽게 두각을 나타냄)라는 말대로 경제, 정치적인 측면에서 세계적 대국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적어도 한국과 중국의 동시 쇠락이 현실로 나타나 동북아, 나아가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뒤흔들 구도가 재현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거의 없는 것이다.

솔직히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고 있다. 이 점에서 중국의 입장은 미국이나 러시아, 일본과 다르다. 이들 국가는 어떻게 해서든 한반도가 분열돼야 자국에 유리하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특히 일본은 강대한 통일 국가가 한반도에 출현하는 것을 절대로 바라지 않고 있다. 대국 중국의 존재가 한반도에 대단히 이롭다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한·중간의 좋은 관계에 파열음이 나는 것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한·중 수교 12년이 지난 지금 양국의 경제합작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미 경제적으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 관계에 이르고 있다고 봐도 좋다. 양국 국민들의 교류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베이징 차오양(朝陽)구의 왕징(望京)지구같은 곳은 10만 주민들중 3만~4만명이 한국인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을 정도이다. 양국 관계를 12년전의 과거로 되돌렸다가는 엄청난 혼란이 초래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물론 부모 자식 사이에서도 갈등은 존재한다. 한·중간의 관계가 언제나 좋을 수는 없다는 얘기가 아닌가 싶다. 더구나 적당한 긴장은 서로를 위해서도 좋다. 그러나 한·중 관계를 되돌리기 어려울 수준으로 치닫게 할 반중 감정은 좀 곤란하지 않을까 싶다. 중국도 이 문제에 대해 일부 신중한 검토를 해야 하겠으나 한국 역시 냉정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보인다.

<리둔치우 中사회과학원 세계역사硏 연구실 주임>

(문화일보 2004-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