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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역사왜곡과 과거사 청산
중국이 고구려를 자기 역사라고 떼를 쓴다. 역사 도둑질이다.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여기고 있다간 중국 주장이 기정 사실화할 가능성도 있다. 이게 우리가 철저히 경계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이유다. 이제
와서 국사 교육을 다시 철저히 해야 한다고 뒷북을 친다. 역사 공부를 잘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이번 일이
우리가 역사 공부를 게을리해서 벌어진
건 아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낌새는 일찍부터 감지됐다.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에서의 중국 역할 등을 이유로 중국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학술적인 사안이라고 방치하다가 문제가 커지면 떼밀려 중국에 항의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여기까지 왔다. 이제 여야가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지만
흥분하고 감정을 앞세워 조급하게 서두르면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중국은 일본에 대해 역사 왜곡을 한다고 강경 대응하고 있다. 남의 잘못은 지적할 줄 알면서 제 잘못은 모르고 있다. 중국은 손 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인가, 아니면 경제적으로 힘이 강해지자 제국주의적 발상을 하는 것인가.
역설적으로 중국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미국도 중국도 우리에게 모두 중요하다. 국가 간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지만
동맹관계는 엄연히 존재한다. 아직도 남북은 대치하고 있고 안보 위협이 상존하고 있는 냉엄한 현실을 외면하면서, 언제부터였던가 반미(反美)를
부르짖고 중국에 다가가면서 그걸 애국이라고 착각했다.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의 63%가 중국을 미국
보다 중시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일을 고의적으로 꾸며 남을 괴롭히는 건 나쁘지만, 단순한 실수는 경우에 따라 용서받을 수 있다. 고구려사 왜곡과 비슷한 일을 미국이
획책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미군 장갑차에 치여 여중생이 사망한 건 불행한 일이었지만 그건 불의의 교통사고였다. 그런데도 특정 세력의
목적과 의도대로 반미를 외치는 촛불 시위가 오랫동안 지속됐고, 촛불은 어느새 반미 횃불이 됐다.
중국의 역사 왜곡은 고의다. 그런데도 그 흔한 촛불시위도 없다.
반중(反中)을 외치며 데모해야 한다는 걸 말하자는 게 결코 아니다. 감정적으로 대응할 일은 더욱 아니다. 미국과 중국에 대해 다른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 것 같다는 걸 말하고자 함이다. 어떤 나라와도 국가 이익을 위해서 협조할 땐 협조하고 싸울 땐 싸우고 이해할 건 이해하고
주장할 건 당당히 주장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과거사 청산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과거사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미래를 열 수 없다고 한다. 국민 어느 누구도 과거
유신시대로 돌아가자는 사람은 없는데, 유신시대로 돌아가느냐, 미래로 가느냐의 갈림길에 있다고 한다. 잘못된 과거사는 바로 잡아야 하지만 그걸
정치권력이 정략적으로 접근한다면 올바른 청산일 수 없다. 정권을 잡았다고 해서 역사 해석에 대한 전권까지 잡았다고 착각하면 안된다. 그건
정치권력의 오만이자 독선이다.
과거사 청산에는 국민의 다수가 납득하지 못하는 경력을 민주화 운동으로 판정하는 문제도 걸려 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거를 들추겠다는
속내도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국가 정체성 논란이 일고 있다. 어느 누구도 역사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대통령을 지낸 사람의
공과는 당연히 평가되게 돼 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의 과거 들추기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공격하기 위해서라는 게 많은 국민의 인식이다.
사실이 어떻든 박근혜 대표를 공격하려면 박근혜 본인을 목표로 해야 옳다.
과거사 청산이 아무리 급해도 먹고 살기보다 급할 수 없다. 우리에게 급하고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역사를
바로 써내려 가는 일이다. 그래야 중국의 역사 왜곡에도 대응할 수 있다.
<류동길 /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문화일보 2004-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