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고구려사 왜곡 80년대 시작
중국이 국가차원에서 고구려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미 1980년대부터 ‘고구려사=중국사’라는 견해가 중국 역사학계의 정설로 자리잡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구려연구재단 윤휘탁
연구위원은 오는 13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주최의 ‘한국근대사와 고구려·발해인식’이라는 심포지엄에서 이같은 요지의
논문을 발표한다.
윤연구위원은 미리 제출한 논문 ‘근현대 중국의 고구려·발해 인식’에서 지금까지 중국에서 출간된 고구려 관련 저서 및 논문을 총체적으로
분석, 중국의 고구려사 인식 변화과정과 문제점을 파헤쳤다.
윤위원에 따르면, 중국의 고구려사 연구는 광개토왕비 발견(1877년)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양이의 ‘호태왕비고증’(1887년),
성욱(盛昱)의 ‘호태왕비석문’(1889년) 등이 출간됐다. 이후 1941년 김육불은 ‘동북통사’에서 고구려에 대한 많은 역사사실을 논증했다.
그는 고구려사를 중국 동북사의 범주에서 파악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는 변경의 민족 역사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나 50~60년대 중국 학자들은 고구려를
신라·백제와 함께 한국사의 범주로 파악했다. 이러한 인식은 중국 중학교 교과서나 저명한 역사학자들의 저서에서도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중국에서 고구려 연구가 본격화한 것은 개혁·개방정책이 실시된 80년대 들어서부터. 이는 북한이 주체사관을 바탕으로 고구려사 연구를
가속화하고 남한에서 민족정신을 고취하려는 분위기가 고조되는 시점과 맞물리는 시점이다.
이를 전후해 중국의 고구려사 인식의 변화가 나타난다. 중국 교육부 주관으로 14개 대학이 공동편찬한 ‘세계고대중세기사’(1978년)와
쑨이쉐(孫義學)이 펴낸 ‘세계중세기사’(1985년)는 “고구려는 중국에서 흥기했고 두 국가의 영토경계에 걸쳐 있는 고대민족”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고구려사를 중국사와 한국사 모두의 역사로 파악하는 이른바 ‘일사양용’(一史兩用) 사관이 등장한 것은 이 때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국민과 영토 통합을 국정과제로 내건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내걸면서 고구려사는 중국사로 귀속시키는 작업이 이뤄진다.
리띠엔후(李殿福), 쉬더위엔(徐德源) 같은 학자는 고구려가 중국에 조공관계를 유지하고 고구려와 수·당간 전쟁을 ‘통일전쟁’으로 파악하면서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단정하게 된다.
윤위원은 ‘중국동북사’(1987년), ‘고구려간사’(1990년), ‘중국동북통사’(1991년) 등을 분석, 80년대 후반기부터는
‘고구려사=중국사’라는 견해가 중국 역사학계의 정설이 되었다고 밝혔다.
동북공정은 이러한 중국 역사학계의 고구려 인식이 사회과학원에 의해 정교하게 다듬어지는 프로젝트이다. 윤위원은 동북공정이야말로 국민적·영토적
통합이라는 현재의 필요에 의해 과거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현대판 중화제국’의 재현 작업이라고 밝혔다.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신장 위구르족과 티베트족 등 서부 민족문제 해결을 위해 ‘서부대개발’을 벌이듯, 한반도의 정세변화, 특히 남북통일 이후
조선족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수민족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동북공정’이 추진됐다는 설명이다. 결론적으로 동북공정은 ‘현재
중국의 민족관·영토관·국가관이 응축된 역사인식의 산물’이라는 게 윤위원의 분석이다.
(경향신문 / 조운찬 기자 2004-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