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가 뭐예요?" "김좌진이 누구예요?"

한여름 만주벌판은 거대한 ‘초록 카펫’ 이었다. 거친 벌판 쯤으로 알고 있던 만주땅은 아름드리 나무들을 가득 품은 숲과 기 름진 곡물들을 그득히 안은 거대한 옥토였다.

지난 달 중순 광복회 주관으로 이루어진 ‘독립유공자 자손 항일 독립유적지 순방’ 취재차 청산리와 해림, 하얼빈 등 독립투사들의 항일투쟁 무대를 돌아볼 수 있었다. 당시 30여명의 대학생들을 손수 인솔한 김우전 광복회 회장은 83세의 고령임에도 1500㎞ 의 여정을 버스로 돌며 항일운동 당시의 상황을 생생한 육성으로 들려줬다. 김회장은 유적지로 이동하는 버스안에서 중간중간 학생들에게 김좌진, 홍범도, 지청천 장군등 당시 만주무대를 누비며 항일운동을 벌이던 독립투사들의 활약상을 설명했다.

어디쯤 이동하던 순간이었을까. 뒤쪽에 앉아 있던 한 학생이 작은 소리로 “김좌진 장군이 누구지”하고 옆 친구에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잘못들은 게 아닌가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이자 대학생이 ‘청산리 대첩’의 영웅 김좌진 장군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비단 그 학생뿐이 아닐 것이다. 모 대학 교수는 최근 한 학생으로부터 “고구려가 뭐예요”라는 황당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하긴 요즘 젊은이들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우리의 교육 커리큘 럼 자체에 그런 ‘국사 청맹과니’를 양산해 낼 수밖에 없는 큰 구멍이 뚫려있기 때문이다. 초·중학교의 역사과목은 모두 사회 교과의 일부로 축소·통합돼 있고, 고1때만 필수과목으로 배울뿐 고2때부터 선택과목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이런 지경이라면 언젠가 “세종대왕이 누구예요” “이순신 장군이 누구예요” 라고 묻는 대학생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런데도 고구려사 왜곡 대책이랍시고 ‘초·중·고 보충학습자료 배포’라는 땜질처방만 내놓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안쓰럽기만 하다. 역사왜곡이 어디 고구려사 뿐인가.

(문화일보 200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