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이냐 외교냐' 고심하는 정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정부가 향후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 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중국이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고구려'를 삭제한 연장선에서 정부수립 이전 한국사를 전면 삭제한데 이어 원상복구를 요구하는 우리 정부의 강력한 요구에도 기존입장을 고수한 데 대해 당장 강력한 `응징'을 요구하는 국내 여론 때문이다.

뜨거운 국민 여론을 반영한 듯, 뒤늦게나마 여야 정치권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강력한 유감을 표시한 데 이어, 특위를 구성하고 통일외교통상위 등 관련 상임위 연석회의를 열어 국회 차원의 공동대응 방안을 마련에 나섰다.

여야 의원 52명은 고구려사 왜곡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국회에 이미 제출했 고, 한나라당은 9일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을 찾아 정부의 적극적이고 당당한 대응을 촉구하기로 하는 등 정부를 상대로 고강도 압박을 가할 예정이다.

네티즌들도 항의 표시로 외교부 등 중국의 주요 사이트에서 `사이버 시위'를 벌이는 한편, 우리 외교부 홈페이지에는 강력 대처를 촉구하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심지어 강력한 항의조치 중 하나인 주중 대사 소환 얘기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처럼 국내 여론은 `고단위 처방'을 요구하며 들끓고 있으나, 당장의 뾰족한 ` 대책이 없고 강수로 일관하는 것이 이번 사안을 해결하는데 일정한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그다지 실익도 없다는 점에 외교부를 비롯한 정부 당국의 고민이 놓여 있다.

한 정부 당국자는 8일 "사안 자체가 국민의 감정을 자극할 수 밖에 없는 것이어서 국민의 격앙된 감정은 이해되지만 이를 여과없이 외교로 실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감정에 편승한 감정적 대응은 자칫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논리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중국의 화법에 비하면 외교관의 화법은 대단히 솔직한 편" 이라며 "그런 점에서 중국을 상대로 성미 급하게 대드는 것은 스스로 화를 자초할 수 있다"고 말해 감정적 대응의 `함정'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일단 중국이 자국내 여론과 한국의 입장을 모두 고려해 논란이 되는 부분을 아예 삭제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냉철함'을 가지고 확실한 역사적 증명을 통해 `고구려는 한국사'라는 점을 중국에 각인시켜 더 이상 이 문제를 두고 중국이 발목을 잡지 못하도록 해야 할 때라고 가닥을 잡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관점에서 정부는 중국 교과서 왜곡 가능성 등 더 이상의 왜곡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확실한 근거를 중국에 내밀어 고구려사에 대해 못을 박고자 하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사는 한국사라고 기술하고 있는 일본 학계 등 중국이 객관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국제적인 학술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방침도 이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이 정부 당국자는 "중국과의 역사교섭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는 것은 말로 싸 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구려에 대한 연구역량을 빠른 시일내에 축적하고 이를 통해 국제사회에도 고구려사가 한국민족사의 불가분한 일부분이라는 인식을 확산시 키는 것"이라며 "중국은 학술교류로 해결하자고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별 성과가 없지 않겠느냐"며 이번 사안이 장기전에 들어갔음을 강력 시사했다.

그는 "내년 가을 새로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 교과서에서 고구려사 부분이 왜곡될 우려가 있어 박준우 외교부 아태국장 방중시 중국정부가 관여하는 출판물 부분에 포함시켜 이 부분도 왜곡이 안되도록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말해 장기적인 대 응과는 별도로 중국당국의 추가왜곡 조치 가능성에 대한 단기대응책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같은 여론의 감정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 외교적 대응이 자칫 국민들에게 `저자세 외교'로 비쳐지지 않을까 하는 부분도 정부의 고민거리다.

9월말 이전에 열릴 제4차 북핵 6자회담이나 탈북자 문제 등 중국의 협조를 받아야 할 현안도 적지 않다는 점도 우리 정부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정부는 이 사안을 북핵이나 탈북자 문제와 연계하지도, 연계해서도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른 당국자는 "북핵과 탈북자 문제 때문에 역사문제와 관련해 우리가 저자세 외교를 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북핵 등이 남북간 문제이기도 하지만 중국의 국익과도 관련된 문제여서 단순히 우리가 협조만 받는 사안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향후 정부가 연일 들끓고 있는 국민여론을 한 단계 걸러 감정을 누그러 뜨린 채 `외교적인' 외교로 일관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연합뉴스 200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