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고구려사 왜곡' 왜 침묵하나

고구려 고분벽화 세계문화유산 등록 직후 이슈가 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북한은 8일 현재까지 공식적 언급을 삼가고 있다.

북한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민족사의 정통성을 크게 훼손하는 중대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 신보를 통해 간간이 비판하는데 그치고 있다.

노동신문, 민주조선, 평양ㆍ중앙방송 등 언론매체는 지난달 6일 고분벽화의 세계문화유산 등록 사실을 뒤늦게 전하고 고구려 역사의 우수성을 지속적으로 홍보하는 방법으로 중국의 왜곡에 `간접 항의'를 표시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은 총련기관지 조선신보(7.16)에서 "중국이 고구려를 자국의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시도는 심각한 역사왜곡"이라고 한 것이 전부.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 강좌(학과)장 김은택 박사는 지난달 21일 조선신보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을 직접 거명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일부 대국주의 사가들이 고구려의 역사와 우리 민족국가의 전통과 지위를 말살하려고 갖은 책동을 다하고 있다 "며 민족사를 고수하기 위해 연구ㆍ홍보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만 말했다.

주목되는 것은 북한의 이런 대응이 지난 2월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

북한은 지난해는 물론 올 2월까지만 해도 대내외 매체를 통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직ㆍ간접적으로 거세게 비난했다.

김은택 김일성대 박사, 손수호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장, 송순탁 조선중앙역 사박물관 부관장 등 유명 역사학자 3인은 지난 2월 평양에서 발행하는 대외용 '통일 신보'(2.28)와 좌담회에서 중국을 직접 거명해가며 "앞으로 존엄높은 우리 민족사를 왜곡 말살하려는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북한의 이같은 상이한 대응은 북ㆍ중관계의 흐름 이 변화한 데 따른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신의주 특구 초대 행정장관으로 임명됐던 양빈(楊斌)이 2002년 중국당국에 전격 구속된 이후부터 금년 4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양국 관계가 소강상태를 보였다.

핵보유설을 흘리며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소극적인 북한의 자세를 두고 양국간 갈등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방중,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핵문제 해결방법을 놓고 중국과 호흡을 맞춘 뒤 중국은 핵문제에서 북한의 입장을 중재하는 등 양국관계는 순항하고 있다.

또 중국은 2천400만달러를 투자해 평안남도 대안군에 유리공장을 무상 건설해주고 원유 및 식량지원, 일반 상품에 대한 할인가격 적용 등 경제난을 해소하려는 북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중국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차치하고라도 외교ㆍ경제 등에서 중국에 기대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고구려사 문제에 적극적인 대응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우영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최근 북ㆍ중관계가 워낙 좋은데다 북한이 6 자회담을 겪으면서 핵문제에서 중국과 협력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북한이 고구려사를 정통성과 연계짓고 있기 때문에 계속 침묵하고 있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남북간 공동대응 등을 통해 나름대로 보완책을 마련해 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마냥 무대응으로 일관하기에는 북한으로서도 큰 부담이라는 지적이다.

(연합뉴스 200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