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외교부 홈피서 한국사 삭제된 이유

[분석] 6자회담 일정과 맞물린 '후진타오 독트린' 외교 노선

8월 5일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대한민국 수립 이전의 한국사가 삭제되었다. 갑작스레 발생한 일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요구를 미봉책으로 비껴간 것이어서, 중국의 진의가 무엇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중국이 지난 4월 20일 삭제한 고구려사 부분을 홈페이지에 다시 추가하는 데에는 불과 몇 분의 시간밖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중국 측은 홈페이지 내용을 수정하기 위해서 아예 삭제했다고 했지만, 글 몇 문단만 추가하면 될 일을 굳이 삭제까지 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중국이 한국의 공세를 우회적으로 피하기 위해 행한 조치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이번 조치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한동안 백제·신라만으로 한국 고대사를 기술하던 홈페이지 내용을 아예 삭제했다는 점에서는, 중국이 한국 측의 요구를 전혀 무시하지는 않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수립 이전의 한국사 부분을 모두 삭제했다는 점에서는, 사안의 본질을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대체 어떠한 목적에서 홈페이지 내용을 삭제했는가를 분석함에 있어서, 단지 동북공정 하나만을 판단 자료로 삼아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동북공정 하나만으로 중국의 한반도 정책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후진타오 독트린, 중국의 제국주의적 외교의 시작

2002년 11월 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와 2003년 3월 제10기 전인대 제1차 회의에서 공산당 총서기 및 국가 주석직에 오른 후진타오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대외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종래의 사회주의 노선에 기인한 소극적 외교에서 벗어나 제국주의적 특성을 띤 적극적 외교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두고 2월 24일자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는 '중국이 새로운 독트린을 취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후진타오 독트린'이라 부를 수 있는 새로운 대외 정책 기조 하에서 중국은 한반도에서의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른 바 'Pax Sinica(중국의 힘에 의한 평화)'라 할 수 있다. 당연한 언급이긴 하지만, 후진타오의 한반도 전략은 이 지역에서의 중국의 힘을 강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한반도를 상대로 중국의 힘을 강화시키는 것은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 중국 자신의 힘을 강화시키는 것과 상대방인 한반도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 그것이다. 전자를 위해서 중국은 6자회담을 통한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후자를 위해서는 동북공정 등을 통해 한국을 현재 수준에서 묶어 두려 하고 있다.

일본이 세계적인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국제 정치적 지위가 낮은 것은, 과거사 혹은 과거 문제를 내세워 주변 국가들이 끊임없는 견제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거기에는 한국이 역사 문제에서 역량을 소모하도록 유도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적어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중국이 역사 분쟁에서 손해 볼 일이 별로 없다. 고구려사가 한국사임을 인정하게 된다 해도, 어차피 그것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국이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 해도 한국이 전리품으로 획득하게 되는 것은 '고구려사가 한국사'라는 점을 인정받는 것뿐이다.

도망가는 강도를 열심히 추격해서 물건을 되찾는다 해도, 그 동안의 시간 및 체력 소비를 만회할 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강도를 추격하지 않을 수도 없으므로, 한국은 동북공정 과정에서 국가적 역량을 일정 정도 손실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서는 한반도의 역량을 감소시키고 6자회담을 통해서는 자국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려 하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 패권이라는 목표 하에 두 개의 카드를 활용하는 것이므로, 중국이 동북공정과 6자회담을 상호 관련적인 사안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중국은 상황 변화에 따라 두 개의 카드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그럼, 지금 시점에서 동북공정과 6자회담이라는 두 개의 카드 중에서 어느 쪽이 중국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것일까?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지난 7월 한달 동안 중국은 양안 문제 때문에 힘을 많이 소모했다. 이런 상황에서 동북공정을 강도 높게 추진한다면, 자국의 힘을 더 소모할 뿐만 아니라, 북한까지 적으로 만들 수 있다.

6자회담과 동북공정, 중국의 선택은?

▲ 제3차 6자회담 둘째 날인 6월 24일 북 김계관 수석대표와 미국 제임스 켈리 수석대표가 얼굴을 돌린 채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2004 연합뉴스 진성철
이 시점에서 중국의 힘을 재충전하려면, 6자회담 중재를 통해 외교적 영향력을 되찾는 편이 더 효율적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동북공정 카드는 잠시 접어 두고 6자회담 카드를 내미는 게 중국 입장에서는 보다 유리한 것이다. 그리고 6자회담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자면, 동북공정으로 인해 달아오른 국면을 잠시 식힐 필요가 있다. 중국은 그런 판단에 기초하여 8월 5일자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듯, 중국 외교부의 8월 5일 조치는 최근 동북아 정세의 변화와 맞물려 단행되었다. 그럼, 지난 한달간의 상황을 간략히 정리해 보기로 한다.

6월 28일 이라크 임시 정부에게 주권을 이양한 이후 미국의 전략적 관심은 동아시아로 옮겨왔다. 그리고 7월 8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의 중국 방문 이후 양안 문제가 갑자기 불거지기 시작했다. 7월 14일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이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 의사를 밝힘에 따라 중국 측의 분노를 유발한 것이다.

무력 충돌 일보 직전까지 치달을 것만 같았던 7월의 양안 위기는, 단지 중국 대 미-대만의 구도가 아니라, 싱가포르가 독자적으로 개입하는가 하면, 중국 대 미-일-대만의 축이 형성될 조짐까지 보였다.

흥미로운 것은, 미·중이 서로 긴장 관계를 연출하면서도 제3자인 북한을 상대로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냈다는 점이다. 미 국무부가 7월 20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반도평화포럼에 북한 외교관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이례적으로 허용한 일이 그 하나다. 그리고 7월 23일자 한국 주요 언론 보도와 같이, 중국이 양빈 전 신의주경제특구 행정장관을 가석방했다는 관측이 제기된 것이 또 한가지다.

한편, 양안 위기와 함께, 10년 만의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남북 관계에는 때아닌 한파가 불어닥쳤다. 한국 정부가 김일성 전 북한주석의 10주기 추모제(7. 8) 참석을 불허한 일이 있은 뒤에, 7월 14일 서해상에서는 남북 해군이 충돌하였으며, 27일부터 양일간은 탈북 동포들이 한국에 대거 입국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북핵 해법과 관련하여서도 북·미간에 신경전이 오고 갔다. 7월 23일 존 볼턴 미 국무부 차관이 북한을 상대로 리비아식 해법의 수용을 촉구하자, 바로 다음 날인 24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더 이상 논의할 가치가 없다'면서 일축해 버렸다.

이렇게 동아시아 정세가 급속히 냉각됨에 따라, 종전에 6자회담을 매개로 역내(域內) 영향력을 구축해 오던 중국의 입지가 위축될 가능성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극적인 반전이 생겼다.

8월 3일 상원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 테드 스티븐스 미 상원 임시의장이 중국측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대만에 대한 무기 수출 의지를 확고히 한 데 이어,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스티븐스 임시의장의 방중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후진타오 주석과 스티븐스 임시의장의 회견에서는 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인식을 같이 하기도 했다. 미·중간에 최근 사태와 관련하여 모종의 양해가 이루어졌을 수 있음을 짐작케 한다 하겠다. 이렇게 해서, 양안 문제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 조짐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날인 8월 4일 중국 정부가 6자회담 실무회의를 9월에 개최할 것임을 시사했다. 동북아 정세의 화두가 양안 문제에서 북핵 문제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이러한 상황에서 8월 5일 중국 정부가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대한민국 이전의 한국사를 아예 삭제하는 미봉책을 취한 것이다.

중국의 8월 5일 조치. 우호적 분위기 형성 위한 임기응변

중국의 8월 5일 조치는, 6자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한국을 굳이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6자회담을 위한 우호적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중국 측이 임기응변으로 대처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6자회담의 틀이 손상되면, 동북공정으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은 일시적으로 한국 측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일부 삭제했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는 적어도 지금 당장에는 동북공정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보여 준 것이다. 어떻게든 일시적으로 공세를 모면하겠다는 의도가 더 짙은 것이다.

한국의 공세를 무디게 하기 위해 이번 조치를 취했지만, 중국의 예상이 어느 정도나 적중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번 일이,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인들의 감정을 보다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를 통해, 중국이 동북공정과 6자회담을 연계시켜 한반도 관계를 조율하고 있음이 한층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러므로 한국이 동북공정의 승자가 되고자 한다면-사실 승자가 된다 해도 상처뿐인 영광이겠지만-6자회담을 포함한 전반적인 전략적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오마이뉴스 / 김종성 기자 200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