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역사전쟁…주변국에 왜 시비 거나] 中 ‘소수민족 이탈막기’ 용광로 작업

중국의 주변국에 대한 역사 시비는 한족 외에 다른 변방지역의 민족을 철저히 배척하고 급기야 중국으로 동화시키려는 제국주의적 발상에 근거하고 있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사로 편입하기 위해 마련한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이름에는 그들이 동서남북의 타 민족을 오랭캐라 칭하며 동이(東夷),서융(西戎),남만(南蠻),북적(北狄)이라고 불렀던 민족 차별의 정서가 드러난 것. 하지만 후진타오 등장 이후 중국 당국은 민족 차별의 역사를 역치시켜 오랑캐마저도 중국인이라는 새로운 논리를 강화하고 있다.

일례로 남송시대에 거란(오랑캐)의 공격을 막아낸 충신 악비를 ‘민족 영웅’으로 칭송해 왔으나 최근에는 중국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악비는 영웅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여기엔 “중국을 침략했어도 중국의 역사이며 오랑캐도 중국인이다” 또는 “거란에 의해 송나라가 정복되었어도 이는 궁극적으로 민족내부의 분쟁이다”는 뒤틀린 역사 논리가 깔려 있다. 이는 중국 당국이 주장하는 ‘통일다민족국가’라는 용어로 집결된다.

중국은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55개 소수민족을 녹여 하나의 중국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 용어 속에는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해석하는 ‘소급의 역사 해석법’이 도사리고 있다. 55개 소수민족 속에는 몽골과 티베트,위구르,하사크,회족 등은 물론 조선족도 포함되어 있다. 중국은 이미 한족 왕조를 멸망시킨 여진족(金),몽골족(元),만주족(淸)의 역사를 모두 그들의 역사로 편입하였다. 아울러 이들 이민족과의 분쟁을 ‘중화민족 내부의 분쟁’이지, 외국과의 전쟁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논리라면 수-당과 고구려와의 전쟁도 ‘민족 내부의 분쟁’이라고 주장할 여지가 충분하다.

역사적으로도 1911년 외몽고는 청나라로부터 분리된 엄염한 독립국가가 되었지만 당시 중화민국은 2차대전이 끝난 1945년까지 무려 34년동안이나 외몽고의 독립을 인정치 않았다. 그나마 소련의 스탈린 서기장의 압력에 의해 몽골인민공화국을 승인한 것은 1946년이었다. 티베트의 경우 1950년 중국의 무력침공 이후 현재까지 120만명의 티베트 민중이 중국정부에 의한 고문,사형,기아,투옥으로 사망했다. 이에 대하여 중국은 “티베트문제는 중국의 내정문제일 뿐”이라며 ‘내정불간섭’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정부의 억지 주장일 뿐이다. 누가 중국에게 티베트 민족을 대표할 권리를 주었던가. 아무리 그들이 봉건주의로부터 티베트 민중을 해방시켰다고 주장한다 하더라도, 중국은 결국 침략자에 불과하다.

이평래(국민대 한국학연구소 연구원·몽골사 전공)씨는 “티베트와 13개 소수민족이 모여 사는 신장지역은 아직까지 중화되지 않은 마지막 저항 지역으로 신장 지역의 인구 2000만명 가운데 한족의 인구 비율이 절반을 넘어섰다”며 “이들 지역이 중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소련이 붕괴되어 여러 나라로 갈린 이후 중국 당국은 자국 영토 내 소수민족 문제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특히 중국의 56개 민족 가운데 5개 민족이 주변에 모국(母國) 내지는 망명정부를 가지고 있다. 몽골족(몽골),조선족(한국과 북한),하사크족(카자흐스탄),티베트족(달라이라마 망명정부),대만이 그것. 중국의 주변국에 대한 역사 시비에는 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독립을 요구하거나 통일국가가 될 경우 몰고올 엄청난 지정학적 변화에 대한 중국의 속앓이가 내재되어 있다.

(국민일보 200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