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막가는 중국에 당당히 맞서야

중국은 엽기의 나라다. 불가사의도 많고 기상천외도 많고 자가당착도 많은 나라가 중국이다.

고구려사 왜곡 문제로 엽기적인 행각을 보여온 중국 정부가 지난 5일 급기야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이전의 우리 역사를 중국 공식 홈페이지에서 몽땅 제거해버렸다. 중국 정부는 올 4월 20일 전까지는 한국 고대사가 고구려, 백제, 신라로 삼분되어 있었다는 입장을 취했다. 아주 중요한 얘기인데, 이때까지 중국 정부는 고구려 역사가 한국사의 엄연한 일부임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고, 이를 공식적으로 시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4월 20일 중국은 고구려사를 정부 공식 홈페이지에서 느닷없이 제거하였다. 오랜 연구와 천착과 발굴의 결과로 어떤 역사 사실을 바꾼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동기와 작심에 의해서 결행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해괴한 일이 학문적인 일이 아니라 정치적인 일이며, 따라서 이 일이 변경이 아니라 왜곡이라고 단정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한국 정부는 삭제된 고구려사 부분의 원상 회복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한 중국측의 공식 반응이 1948년 이전의 모든 우리 역사를 아예 제거해버리는 방식이었다. 불필요한(?) 공방의 원인을 원천적으로 없애버리겠다는 정략이었겠지만, 우리에게 읽히기로는 ‘어쩔 테냐?’는 것이다. ‘배째라’는 식으로 나온 것이다.

중국답지 못한 일이고, 중국다운 일이다. 거대 국가의 넉넉함을 막연히 기대해오던 사람에게는 당혹스러움이기에 이 일이 전혀 중국답지 못한 패착인 동시에, 티베트와 대만과 같은 연약한 민족이나 나라에 해온 피눈물도 없는 모습을 보며 약소국보다 못한 강대국이라고 생각해온 사람에게는 이 일이 매우 중국다운 졸작품일 터이다.

일언이폐지하고, 중국 정부는 역사를 원상 회복해야 한다. 백주에 자행되고 있는 역사에 대한 정치적 ‘외과수술’이 못난 짓이고 통할 수 없는 짓이기에 사죄하고 원상 회복해야 한다. 만약 중국 당국이 이를 거부하거나, 묵묵부답으로 묵살하거나, 지난 5일에 한 것처럼 ‘배째라’ 하고 나오고 난 뒤의 사태 진전은 두말이 필요없이 중국측 책임이다.

따라서 한국과 한국 정부는 당당하고 준엄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 일은 어리석은 일이고, 될 수 없는 일이고, 득 될 게 없는 일이라는 걸 강퍅한 저들이 깨닫게 해줘야 한다.

정부는 ‘정경분리’의 원칙을 대담하게 적용해야 한다. 북핵관련 6자회담에 무슨 악영향이나 없을까, 중국발 경제 효과에 차질이 생기지나 않을까 따위의 못난 두려움은 없어도 좋다. 이미 저들이 정경분리의 태도로 나오고 있지 않는가. 정부는 ‘정경연쇄’의 두려움을 떨쳐버려야 한다.

앞으로 정부는 중국 문제에 관한 한, 저들이 역사 왜곡을 사과하고 시정하지 않는 한, 글로벌스탠더드라는 한층 강화된 기준과 잣대로 평가해야 한다. 중국의 구시대 패권적 책략에 입각한 소수민족 국가에 대한 잔인한 태도들과 중국 내 반인권적 전체주의의 탄압 행위들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살상무기 수출 행태들에 대해서 비판하고 경고해야 한다.

우리 지도층은 당장 집안싸움을 멈춰야 한다. 한·중·일의 동북아시아는 첨예하게 경쟁하고 적대하고 있다. 그런데 한·중·일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만 연일 지도층들이 뒤엉켜 진흙탕싸움을 벌이고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들이 볼 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에 뒤엉켜 싸움질만 해대지 말고, 정말 큰일, 이번 고구려사 왜곡처럼 오천년 민족사의 큰일에 벌떼처럼 들고 있어나 ‘독전(督戰)’하는 성숙하고 지혜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큰 정치, 속시원한 정치로 지도층과 국민이 한덩어리가 되어 한·중·일 신(新)각축의 이 시대를 극복하고 개척하는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가자.

(세계일보 / 황주홍 건국대 교수·정치학 200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