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고구려史 공유하기

중국 외교부가 금년 4월 자체 홈페이지의 한국 고대사 부문에서 고구려사를 삭제함으로써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문제는 이제 한·중 양국간의 단순한 학술논쟁을 넘어 심각한 외교적 현안으로 대두되었다.

中國 교과서도 “한국역사”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 중국 학계나 정부가 견지해 왔던 기본 입장과도 모순되는 것이라 우리를 당혹케 한다. 고구려사 문제에 대해 중국학계는 오래 전부터 보다 명료한 결론을 갖고 있었다. 즉 고구려사는 조선역사일 뿐 아니라 동시에 중국 동북지방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고대 한 국가의 역사가 현재 두 국가의 역사로 활용될 수 있는 ‘역사공간에 대한 공유’ 인식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중국학계에서 고구려사를 조선 역사에 귀속시켜 조선역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취급한 사실은 중국에서 출판된 많은 저작물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중국 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고구려사를 조선 중세기사의 중요 부분으로 폭넓게 서술해 왔으며, 특히 중국 역대 왕조와 고구려와의 관계를 국제관계와 대외관계로 규정해 왔다. 무엇보다 이러한 사실은 중국의 현행 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서 조선사 부분이 고구려사로부터 시작되는 데서 잘 반영돼 있다.

지금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역사상의 ‘과거’와 현재의 ‘오늘’이라는 서로 다른 시간관념을 혼용한 결과이며, ‘오늘’의 틀에 기초해서 ‘과거’ 역사상의 국가영역을 규정한 중대한 오류로 볼 수 있다.

지금 중국은 그들의 정체성(正體性)을 ‘통일적 다민족국가’로 규정한다. 이러한 ‘통일적 다민족국가’는 각 민족 간의 분열과 통일, 동화와 융합으로 점철된 복잡한 역사과정의 산물이며, 중국의 현존하는 국경선도 이러한 역사 발전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역사상 중원(中原)의 한족(漢族) 왕조와 주변 소수민족 간의 관계도 당시의 실제상황에 따라 기술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고구려사 귀속문제도 당시 고구려의 중원 한족 왕조에 대한 융합이나 귀속 여부가 판단의 중요한 척도와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중국측이 고구려사를 자국사로 해석하는 주요근거로 제시하는 조공이나 책봉은 영토적 귀속이나 융합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조공과 책봉을 중원 왕조와 주변 소수민족 간의 상호관계 성격 결정의 기본 척도로 인식한다면, 조선왕조도 중국사로 편입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시간관념상의 명확한 척도를 확립하지 않은 채 오늘의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경을 기초로 1000여년 전에 독립국가로 존재했던 고구려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시도는 너무도 황당한 일이며, 역사 패권주의의 발로(發露)로밖에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중국의 행위나 시도는 전면적 동반자관계를 지향하는 한·중 양국관계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한국史이면서 중국地方史

앞으로 중국은 고구려사를 조선 역사의 중요 부분으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중국 동북지역의 지방사(地方史)로 규정해 온 기존의 입장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도 이를 거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고구려사의 상당부분이 중국 동북지역에서 기원하였고 705년간 고구려 통치의 대부분도 바로 이 지역이었다는 사실에서 볼 때, 중국이 그들의 주권적 영역으로서의 동북지역을 포기하지 않는 한 705년간의 역사 기술인 고구려사를 그들의 역사 범주에서 완전히 배제시킨다는 것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중 양국이 협력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 가고 동북아에서의 평화와 공존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고구려사에 대한 접근도 이분법적 방법에서 탈피, 과거 역사의 공유라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입장에서 모색해 가야 할 것이다.

(朴 斗 福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조선일보 200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