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없이 한국은 없다

서기 612년 수(隋)나라 군사 113만 3,800명이 수도 탁군(지금의 베이징)을 떠나 북으로 출진했다. 역사상 최대규모의 정벌군으로 기록되는 이 병력의 행선지는 고구려였다. 전투부대원 수만 그렇고, 전쟁에 필요한 군량과 물자 수송부대의 규모는 두 배가 넘었다 하니, 실로 300만 명이 넘는 대군이었다. 중원을 통일한 수 제국의 그 때 인구가 69만호 4,600만 명이었으니, 한 집에서 4명 이상의 장정이 차출된 셈이다.

국력을 총동원한 그 전쟁에서 도전자는 인구가 10분의 1 밖에 안 되는 고구려에게 참패하였다. 그 뒤 세 차례 출정의 결과가 모두 그러하였다. 패인은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 출정 시기를 잘못 잡아 날씨와의 싸움에 졌고, 수 양제의 지휘체계가 너무 경직되어 효율적인 싸움을 할 수 없었으며, 보급로가 너무 멀고 험했다는 것 등이 후세 중국 사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패인은 고구려 군사의 용맹성과 단결력이었다. 영양왕과 을지문덕 장군의 뛰어난 지략도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난공불락의 고구려, 수 양제와 당 태종 패퇴시켜

양제의 선왕인 문제는 598년 6월 넷째 아들 양과 왕세적에게 30만 대군을 주어 고구려 정벌을 명하였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수서(隋書)에는 자세한 전황보도 없이 “9월에 철수했다. 이 때 죽은 군사가 10에 8,9나 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거듭된 패전으로 수나라는 망하고 만다. 수의 뒤를 이은 당 태종 이세민도 고구려 정복의 비원을 이루지 못했다. 오랜 기간 주도면밀한 준비 끝에 태종 자신이 선봉장이 되어 북벌에 나섰지만, 고구려의 성들은 난공불락이었다. 연개소문이라는 맹장 아래 목숨을 걸고 막아서는 고구려군의 기세를 꺾을 수가 없었다.

고구려가 이토록 중국에게 저항한 이유는 간단하다. 수와 당은 고구려에 끊임없이 복속을 강요하였지만, 요수 동쪽의 패자라는 자부심을 가진 나라가 중국의 번국(藩國)이 되라는 요구를 호락호락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런 나라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만들려는 현대 중국의 작태는 한국의 존재를 통째로 부정하는 만행이 아닐 수 없다.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면 오늘 한국의 정체성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고구려는 단군조선의 옛터에 세운 나라였다. 천제의 아들과 하백의 딸 사이에 태어난 동명성왕 추모(鄒牟)를 시조로 모신 고구려는 우리 역사의 뿌리며 근간이다. 비록 당과 연합한 신라에게 망하였지만, 즉시 발해에 의해 민족과 문화가 계승되었고, 뒷날 고려에 의해 혼과 정신까지 이어진 아시아 동북 영역의 패자였다.

중국은 수와 고구려의 전쟁을 통일전쟁의 하나였다고 주장한다. 이민족간의 전쟁을 그렇게 규정하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침략자가 번번이 패하고 그 결과 정권이 붕괴된 전쟁을 통일전쟁이라 할 수 있을까.

고구려 역사 왜곡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는 듯, 중국은 외교부 홈 페이지에서 발해 역사를 삭제하더니, 정부수립 이전의 한국역사를 깡그리 부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다. 중국 외교부는 5일 세계 각국을 소개하는 홈 페이지 한국과 북한 역사개관에서 광복 이전 역사는 모두 삭제해버렸다. 다른 나라들은 고대사를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유독 한반도 역사만 지워버린 이유가 궁금하다.

무관심했던 국민과 언론 … 짓밟히고 나서야 꿈틀될 것인가

삭제된 고구려 부분 복원요구에 중국이 한국역사 전체 삭제로 응답하자 정부는 처음으로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조용한 외교론’을 펴며 조심스런 모습을 보이던 외교통상부는 즉시 아태국장을 중국에 보내 항의케 하는 한편, 6일에는 관련부처 실무대책회의를 열기로 했다. 너무 늦었지만 당연한 일이다. 진작 더 강력하게 대응했더라면 중국이 저렇게 방자하게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그동안의 미온적인 태도가 원망스럽다.

더 이해하지 못할 일은 우리 국민과 언론의 무관심이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사건 때는 곧 나라가 뒤집힐 것처럼 떠들고 흥분하더니, 중국이 그러니까 비굴할 정도로 조용하지 않았는가. 침략을 부정하고 미화하는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우리 역사를 통째로 부정하는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은 비교가 되지 않는 일이다. 짓밟히고 나서야 꿈틀대는 미물에 비유되어야 움직일 것인가.

(내일신문 / 문창재 객원 논설위원 200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