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대공정ㆍ동북공정ㆍ중화문명공정과 고구려

요즘 고구려사 사태가 심상치않게 돌아간다. 고구려가 한민족의 선조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있는 우리로서는 고구려사를 '중국사' 영역에 포섭하려는 중국측 움직임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급기야 '조용한 외교'를 표방하던 한국정부까지 공개적으로 나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항의하는 단계로 번지고 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중국측 움직임을 냉철하게, 또 철저하게 분석적으로, 그러면서도 폭넓은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외견상 고구려사 문제가 중국측이 야기한 '역사왜곡'의 전부인 양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으나, 중국측이 추진하는 '중국 만들기' 거대 프로젝트 안에서 고구려 문제는 극히 미미한 한 소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신화 전공자로 최근 산시(陝西)성 일대를 답사하고 돌아온 김선자(金善子.4 7) 연세대 박사는 2000년 이후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또 다른 역사 프로젝트인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을 주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글자 그대로는 '중화 문명의 시원을 캐는 프로젝트'인데, 이것이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지향점은 신화와 전설을 역사의 영역으로 포섭하는 일이며, 이를 통해 '중국' 이라는 실체를 무려 1만년 전으로 끌어올리고자 한다.

김 박사에 의하면 이 프로젝트는 이미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얼마 전 국내 언론에도 소개됐지만, 산시성 양푼(襄汾)현 타오스향(陶寺鄕)이란 곳에서 영국의 스톤헨지 보다 건립연대가 500년이나 빠른 4천100년 전 세계 최고(最古)의 천문대가 발견됐다는 보도는 이 '중화문명탐원공정'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아울러 이 타오스향이란 곳이 전설상 제왕 가운데 하나인 요(堯) 임금 도읍지로 전해지고 있는 것에 착안, 이 천문대 등의 유적이 요순(堯舜)시대의 흔적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같은 맥락에서 이 프로젝트는 2002년 중국 후난(湖南)성 용초우(永州)시 닝유안 (寧遠)현에서 1만년 전 대형 고분을 발굴했다고 발표하면서, 이것이 순(舜)임금 무덤이라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이런 고고학적 발굴을 신화와 전설에 억지로 끼워맞춤으로써 요순시대는 신화와 전설의 영역을 박차고 나와 중국의 '역사'로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중국측의 '중국 만들기'는 요순시대에 그치지 않고 있다. 김 박사에 의하면 중국은 최근 전설상 요순보다 앞서 '중국'을 다스렸다는 황제(黃帝)와 염제(炎帝)에 대한 역사화 작업의 일환으로 그들과 관련되는 신화 전설 구전 등을 집대성한 「염 황자료집」(炎黃資料集)을 최근 10권으로 완간했다.

2000년대 이후 맹렬한 기세로 추진되는 이 '중화문명탐원공정'은 1996년에 시작돼 2000년 11월9일에 완료가 선언된 '하상주(夏商周) 단대공정(斷代工程)'을 직접 계승하고 있다.

역사학자, 고고학자, 천문학자 등 각 분야 전문가 200명이 투입된 이 사업은 전 한시대의 사가 사마천조차 연대를 모르겠다고 포기해버린 하.상.주 3대 왕조의 연대 를 확정하는 거대 프로젝트였다.

그 결과 하왕조는 BC 2070년에 시작된 것으로 '확정'됐고, 상왕조는 BC 1600년 무렵에 건국했다는 학설이 정립됐다. 나아가 상왕조 임금인 반경이 은(殷)으로 천도 한 때는 BC 1300년 무렵, 주왕조의 시작은 BC 1046년으로 각각 설정됐다.

중국이 왜,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단대공정'을 추진했으며 그 구체적인 결과가 어떠한지는 이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한 중국 고고학 전문 다큐멘터리 작가 웨 난(岳南)이 집필한 「천년의 학술현안」(일빛刊)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단대공정' 프로젝트가 지닌 문제점은 연합뉴스 2003년 2월6일자 「천년의 학술현안」 서평 기사를 통해 이미 다음과 같이 지적된 바 있다.

"이 프로젝트가 국가의 이름으로 공포됨으로써 공화(共和) 원년 이전 1200년에 달하는 시대가 '전설의 시대'를 탈출해 '역사의 시대'로 편입됐다. 아울러 이렇게 새롭게 보충된 역사의 시대는 중국사의 영역으로 공식 포섭됐다.

이 프로젝트가 확정한 중국 상고사 기년이 정확한가 아닌가 하는 문제와는 관계 없이, 중국은 늘어난 연대만큼 중국(사)의 영역과 연대를 확대하게 된 셈이다.

현재의 국가가 수천년 전 아득한 과거의 기억을 자기 것으로 삼아 직접 지배하고자 하는 이러한 중국의 상고시대 '연대 확정'이 민족지상주의로 일관하고 있는 일본 우익교과서나 한국의 국사교과서 만큼이나 위험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어 심재훈 단국대 교수는 계간 역사학잡지 「역사비평」 2003년 겨울호에 기고한 '고대중국 이해의 상반된 시각'이라는 글에서 단대공정이 현재의 중국 영토 안 에서 일어난 모든 문명을 중국 문명으로 포섭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따라서 '동북변강역사와 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象系列硏究工程), 약칭 '동북공정'(東北工程)은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거대하게 추진하는 '단대공정' 이나 그것을 계승한 '중화문명탐원공정'과 직접 맞물려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측의 '고구려사 왜곡'을 비판하는 국내 학계에서도 동북공정에 분개하고 그것을 비판할 줄만 알았지, 그 상위에 위치한 더욱 거대한 '중국 만들기' 프로젝트인 '단대공정'과 '중화문명탐원공정'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조차 두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고구려'는 중국이 추진하는 거대 역사 프로젝트에서 지극히 미미 한 소재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지적은 설득력을 지니며, 그렇기 때문에 국내 학계에서 이왕 동북공정에 대처할 요량이라면 '단대공정'과 '중화문명탐원공정'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연합뉴스 / 김태식 기자 200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