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 보루(고구려시대 소형 석축산성)’사적지정 하루가 급하다

서울시·문화재청 추진중에도 계속 훼손

고구려가 한강과 중랑천 유역을 장악하기 위해 아차산·용마산· 망우산 일대 능선의 정상부에 쌓아놓은 20개에 달하는 보루군(保壘群)이 인근 주민들의 등산로와 국민체육시설, 군 헬기장 등으로 이용되면서 훼손이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현재 추진중인 ‘아차산 일대 보루군’의 국가사적 지정이 한시 빨리 이뤄져 유적의 정비 및 보존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지금까지 확인된 아차산 일대 20개 보루 중 한강변에 위치했던 구의동 보루는 이미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또 망우리 공동묘지에 포함돼 분묘가 들어선 망우산 2, 3보루나 체육시설과 봉화대 등이 복원된 봉화산 보루는 원형 훼손이 심각해 아예 이번 사적 지정 대상에서 제외 됐을 정도다.

지난달 31일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최종택 교수와 함께 아차산 일대를 찾았을 때 이들 4개 보루를 제외한 나머지 16개 보루도 지금 손을 쓰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위기상황에 처해 있었다. 최 교수는 아차산 4보루와 시루봉 보루를 발굴했으며 현재 홍련봉 1보루를 발굴중인 국내 유일의 고구려 고고학 전공자 다.

◈아차산 일대 보루군과 보루의 성격〓보루성이라고도 불리는 보루는 사방을 조망하기 좋은 해발 100~300m 남짓의 낮은 봉우리에 쌓은 둘레 100~300m 정도의 소형 석축산성을 말한다. 현재 서울 광진구와 중랑구, 경기 구리시 등지에 위치한 홍련봉(2개)과 아차산(4개), 용마산(7개), 망우산(3개), 시루봉, 봉화산 외에 수락산(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보루 하나도 아차산 일대 보루군에 포함시켜 말한다. 이중 최근 지표조사에서 신라계 토기만 수습된 용마산 6, 7보루처럼 추가 조사가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보루는 고구려가 서기 475년 한성백제의 수도를 함락시킨 뒤 다시 551년 신라와 백제에 의해 한강유역을 상실하기 전까지 군대를 주둔시켰던 유적으로 추정된다.

최 교수는 “백제 수도 한성을 함락시킨 뒤 한동안 몽촌토성에 군대를 주둔시켰던 고구려가 500년쯤 군사적인 이유로 군대를 한강 이북으로 후퇴시킨 뒤 한강과 중랑천, 왕숙천 유역을 감시할 수 있는 아차산 일대에 보루를 쌓고 주둔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보루 중에서도 구의동 보루처럼 규모가 작은 경우는 10 명, 아차산 4보루·홍련봉 1보루·시루봉 보루 같이 큰 경우는 100명이 주둔했다. 최 교수는 “구의동~뚝섬~자양동으로 연결되는 한강변 일대에도 보루가 쭉 있어 아차산 일대를 포함하면 전체적으로 1500~2000명 정도의 고구려 군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단순히 국경 전초기지의 성격을 넘어 중랑천 유역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은 고구려 도시를 방어하기 위한 기능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차산 일대 보루군의 훼손 실태〓아차산 일대 보루군 훼손의 가장 큰 주범은 등산로다. 아차산 공원에서 주능선을 따라 올라 갔을 때 가장 먼저 만나는 아차산 1보루의 경우 지자체(광진구청 )가 폭 3m, 길이 6m 정도의 성벽을 훼손해 등산로를 확장했다.

최 교수는 “이미 보고된 유적이고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 등산로를 밖으로 돌리면 되는데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개탄했다.

무엇보다 능선을 따라 연결된 등산로가 거의 모든 보루의 중심부를 관통하거나 성벽을 따라 만들어져 있어 각종 유구(遺構)와 유물들이 등산객들의 발길에 패여 드러나 있는 등 보존에 문제가 많았다.

가장 규모가 큰 아차산 3보루는 불과 몇년 전만해도 20㎝ 정도 흙으로 덮여있던 온돌과 배수시설 등이 모습을 드러냈으며, 지난 1998~99년 발굴된 뒤 복토된 아차산 4보루도 아차산과 용마산이 연결되는 길목에 위치해 등산객들의 출입이 잦아 이들이 발길에 유적의 훼손이 나날이 진행되고 있었다. 최 교수는 특히 아차산 과 용마산 일대 거의 모든 보루로 올라가는 출입구마다 등산객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놓은 돌계단에 성돌을 사용한 것을 유적훼손 행위라며 비판했다.

등산로 외에 유적 위에 설치된 체육시설과 군 헬기장, 예비군 참호 등도 큰 문제다. 최 교수에 따르면 아차산 3보루에 있는 소형 헬기장의 경우 원래 처음 조성할 당시에는 온돌 유구의 벽체를 뜯어 헬기장 표시로 사용했을 정도였다. 용마산 4, 5보루는 군 헬기장을 만들면서 땅을 깎아내 바닥이 드러나 고구려 유적층이 거의 날아간 상태다. 그네터 체육시설과 용마산 체력장이 설치된 아차산 3보루와 용마산 3보루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용마산 2 보루는 철봉 등 체육시설과 함께 산불감시초소를 설치하면서 유구를 많이 훼손시켰다. 군부대에서 총 길이 180m의 예비군 참호를 구축한 시루봉 보루를 비롯해 용마산 5보루와 망우산 1보루 등에도 군부대가 곳곳에 참호를 파 유적이 훼손됐다.

◈보존대책은〓지난해 12월 서울시 문화재위원회가 아차산 일대 16개 보루를 묶어 문화재청에 사적 지정을 건의한데 이어 문화재 청도 지난 6월 문화재위원회를 열고 아차산 2, 3보루 사이에 있는 소규모 유적 한 개의 추가 및 지정명칭을 둘러싼 문제를 제외 하고는 사적으로 지정키로 원칙적인 합의를 본 상태다. 구조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성벽의 존재가 확인된 유적으로 측량을 거쳐 보루여부가 확정된 뒤 함께 묶어 사적으로 지정되기 위해선 앞으 로 한 두달의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국가사적으로 지정되면 등산로 우회는 물론, 체육시설 철거와 군 헬기장 이전 등이 잇따르게 돼 유적 보존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적 정비에 필요한 적절한 예산확보와 함께 그동안 이를 이용해온 주민 들의 반발을 무마시키는 것이 문제다.

최 교수는 “주민들의 출입을 막기만 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보존으로 볼 수 없다”며 “구름다리를 이용해 위에서 유적을 내려다 보게하거나 전망대를 설치하는 등 유적 보존을 전제로 이를 활용할 계획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2004-8-4)